'탱크' 최경주(40)가 10일(현지시간) 마스터스대회 3라운드 9번홀(파4)에서 버디 퍼트를 성공시키자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최경주는 모자 끝을 잡고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 그의 모자 중앙에 새겨진 태극기 그림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태극 무늬는 최경주가 버디 퍼트를 성공시킬 때마다 더욱 빛났다.

이날 갤러리로 최경주를 따라다닌 한 재미교포는 "모자에 태극기 무늬가 있어 깜짝 놀랐다"며 "외국 친구에게 국기를 설명해주면서 한없는 자부심을 느꼈다"고 말했다.

왼손잡이 필 미켈슨(미국)과 동반 라운드에 나선 양용은의 모자에는 'kotra'라는 브랜드가 붙어 있었다. 검은 모자에 흰색으로 새겨진 다섯 글자(kotra)는 그의 노란색 상의 덕분에 더욱 뚜렷하게 보였다.

한국 남자 골프의 양대 산맥인 최경주와 양용은이 마스터스대회에서 '코리아 브랜드 전도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최경주와 양용은의 멋진 플레이와 함께 이들의 모자에 붙은 국가 상징물이 갤러리들의 눈길을 끌었다. 둘은 공교롭게도 메인 스폰서(후원사)를 찾지 못한 무적(無籍) 선수다. 이들이 태극기와 kotra를 새겨 넣은 이유는 무엇일까.

골프 선수들은 스폰서를 홍보하기 위해 모자와 의류 상의 곳곳에 스폰서 로고를 붙인다. 메인 스폰서를 알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모자 정면에 스폰서 로고를 새기는 것.

최경주는 지난해 나이키골프와 계약 만료된 이후 로고 없는 모자를 선글라스로 가리는 대신 그 자리에 태극기를 넣기로 결심했다. 실제로 올 시즌 미국PGA투어 소니오픈 때부터 '태극기 모자'를 쓰고 출전하고 있다. '태극기 마니아'로 불리는 그는 "태극기가 내게 힘을 준다. 애국심이 나를 이끈다"고 말했다.

그는 몇 년째 태극기를 그려넣은 신발과 가방까지 애용하고 있다. 서브 스폰서인 SK텔레콤과 골프의류업체 슈페리어의 로고(SGF)는 상의 왼쪽과 오른쪽에 달려 있다.

양용은은 지난해 USPGA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뒤 계약 기간이 끝난 테일러메이드 대신 '메이저대회 챔피언'의 위상에 맞는 스폰서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마땅한 업체가 나타나지 않아 올 시즌 로고 없이 '공백'으로 나가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연초 하와이에서 열린 미국PGA투어 개막전인 SBS챔피언십을 앞두고 그는 마음을 바꿨다. '한국 기업이 타이틀 스폰서인 대회에 한국 선수로는 유일하게 출전하는데 로고 없는 모자와 골프백이 말이 되느냐'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난해 말 스폰서십 계약이 불발됐던 'kotra' 로고를 달고 나가기로 했다. KOTRA는 준(準)정부기관이어서 특정 선수를 후원할 수 없기 때문에 계약이 성사되지 않았지만 양용은은 한시적이나마 국가 브랜드를 알리겠다고 마음 먹었다.

아마추어 초청 선수로 이번 대회에 참가한 안병훈(19)과 한창원(19)도 'KOREA' 다섯 글자를 새긴 모자를 쓰고 출전했다.

태극기와 kotra 로고 부착 효과는 얼마나 클까. 지난해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조사한 양용은의 USPGA챔피언십 우승 효과는 기업 매출 및 브랜드 이미지 증가(2584억원),국가 이미지 개선(1300억원) 등 4000억원에 육박했다.

오거스타(미국 조지아주)=김경수 기자 ksm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