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제 약력의 꼬리표에 따라다닐 '소월시문학상'은 제 언어에 주어진 상이라기보다 시인이라는 행로를 택한 운명에 주어진 상이라는 예감이 듭니다. 사물을 낯설게 바라보는 시선,세상을 새롭게 해석해내는 것이 현대사회에서 시인의 역할이겠지요. "

올해 소월시문학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된 송재학 시인(55)의 감회다. 수상의 기쁨보다 시인으로서의 책임감과 소명이 더 크게 다가왔던 모양이다.

그는 "소월의 이름으로 주는 이 상은 놀랍고도 두려운 것이라 등짝이 서늘하다"며 "영혼이 얕은 내가 영혼이 깊은 물가에 물끄러미 서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소월시문학상은 향토성 짙은 서정으로 한국시의 영역을 넓힌 김소월의 시정신을 기리기 위해 1987년 문학사상사가 제정한 상이다. 송씨는 '공중'을 비롯한 15편의 산문시로 올해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만연체의 뼈들이야말로 시의 집을 세워준 기둥'이라고 말하는 그의 시 '공중'은 겨울비가 내린 어느 날 창가에 앉은 새 한마리의 이미지에서 출발한다.

'허공이라 생각했다 색이 없다고 믿었다 빈 곳에서 온 곤줄박이 한 마리 창가에 와서 앉았다 할딱거리고 있다 비 젖어 바들바들 떨고 있다 내 손바닥에 올려놓으니 허공이란 가끔 연약하구나 회색 깃털과 더불어 뒷목과 배는 갈색이다 검은 부리와 흰 뺨의 영혼이다 공중에서 묻혀온,공중이 묻혀준 색깔이라 생각했다 깃털의 문양이 보호색이니까 그건 허공의 입김이라 생각했다. '('공중' 부분)

시인은 오들오들 떨고 있는 새의 깃털 색이 실은 새의 색깔이 아니라 새가 돌아다니는 허공의 색깔임을 직감한다. 그는 "그 곤줄박이는 허공이 떠나보낸 새이고 허공의 색들을 책임진 영혼으로 느껴졌다"며 사유의 폭을 허공으로 넓혀간다.

소월시문학상 심사위원회는 그의 시에 대해 '특유의 언어감각과 조사법(措辭法)을 바탕으로 산문시의 경지를 개척했다'고 평가했다.

그의 시작(詩作) 인생은 고교 시절 우연히 접한 향가(鄕歌)에서 시작됐다.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헌 책방에서 발견한 《향가해제》가 그를 유혹했다. '정읍사(井邑詞)'와 향가,고려가요의 원문과 해설이 함께 수록된 참고서에 가까운 책이었지만 그는 금세 빠져들었다.

그는 "향가를 통해 다가온 말의 아름다움과 정서는 마치 꽃의 색과 향기처럼 서로를 밀착시키는 통로가 됐다"며 "악보같은 후렴과 자꾸 읽히는 종결어미,《삼국유사》에 실린 14수의 향가는 이후 내 글의 밑천이 됐다"고 설명했다. 수사(修辭)에 대한 믿음을 갖고 모든 사물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것도 향가의 유산이라는 얘기다.

그는 대구에서 '송재학의 미(美)치과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의사다.

수상 소식이 전해진 지난 5일 저녁에도 그는 9시가 넘도록 진료실에 붙들려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는 "바쁜 생업을 마치고 은퇴하면 그동안 상상으로만 가보았던 공간에서 무한정 시 쓰기에 빠지고 싶다"고 했다.

부탄과 네팔의 호수,티베트의 우정공로 산정,실크로드의 천산북로 이녕(利寧)쪽 햇볕 만나는 땅,황화와 양자강 발원지,안데스 산맥의 바람 속 등이 그의 희망 여행지다.

앞으로의 시작 계획을 묻는 대목에서 그는 뜻밖의 대답을 내놨다. 누구보다 바쁘게 살면서도 '부지런함'을 강조한 것이다.

"막 중년을 넘기면서 이전과 달리 피로감을 자주 느꼈어요. 사지에 닻을 내린 듯 무거움이 시작되면서 중년이라는 자각이 왔죠.그 때 육체란 정신을 담은 그릇이 아니라 '뫼비우스의 띠'처럼 정신과 서로 이음새 없이 연결된 '같은 그릇'임을 깨달았습니다. 보잘것없는 재주에 기대지 않고 근면하게 정진하려고 합니다. "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