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조태권 회장은 누구‥日·美서 학업…상사맨ㆍ무기상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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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권 광주요 회장은 타고난 사업가이자 코스모폴리탄이다.
1948년 경남 남해에서 부유한 집안의 6형제 중막내로 태어났다. 경기중 2학년때 5ㆍ16혁명이 나자 재일교포였던 부친의 재산이 몰수당했다. 어쩔수 없이 일본으로 돌아간 그는 도쿄에서 외국인고등학교(ASIJ)를 다녔고, 대학은 형이 의사로 일하던 미국으로 갔다. 미주리대학에 다닐땐 프랑스식당에서 웨이터로 일하며 학비를 조달했다. 1974년한국으로돌아온뒤㈜대우에입사했다.
아프리카 섬유시장을 뚫었고,아프리카와 유럽 지사장에 발탁됐다. 1982년 퇴직한뒤 직접 무기중개상으로 뛰어들었다. 세계 최고의 부호들과 어울리며각나라의최고급문화를경험했다.
광주요를 창업해 경영하던 부친 조소수씨가 1988년 세상을 뜨면서 회사를 맡았다. 이후 비색청자는 물론 분청사기,백자 등 전통자기를 복원해 오늘날의 광주요를 일궜다. 광주요는 한해 매출 200억원가량 올리는 강소기업이다.
조 회장의 호는 '省堯(성요)'다. 모친이 "급한 성격만 다스리면 성공할 것"이라며 '항상 반성하며 뒤를 돌아보며 가라'는 뜻으로 지어줬다고 한다.
1948년 경남 남해에서 부유한 집안의 6형제 중막내로 태어났다. 경기중 2학년때 5ㆍ16혁명이 나자 재일교포였던 부친의 재산이 몰수당했다. 어쩔수 없이 일본으로 돌아간 그는 도쿄에서 외국인고등학교(ASIJ)를 다녔고, 대학은 형이 의사로 일하던 미국으로 갔다. 미주리대학에 다닐땐 프랑스식당에서 웨이터로 일하며 학비를 조달했다. 1974년한국으로돌아온뒤㈜대우에입사했다.
아프리카 섬유시장을 뚫었고,아프리카와 유럽 지사장에 발탁됐다. 1982년 퇴직한뒤 직접 무기중개상으로 뛰어들었다. 세계 최고의 부호들과 어울리며각나라의최고급문화를경험했다.
광주요를 창업해 경영하던 부친 조소수씨가 1988년 세상을 뜨면서 회사를 맡았다. 이후 비색청자는 물론 분청사기,백자 등 전통자기를 복원해 오늘날의 광주요를 일궜다. 광주요는 한해 매출 200억원가량 올리는 강소기업이다.
조 회장의 호는 '省堯(성요)'다. 모친이 "급한 성격만 다스리면 성공할 것"이라며 '항상 반성하며 뒤를 돌아보며 가라'는 뜻으로 지어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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