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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EO & 매니지먼트] 대통령 꿈꾸던 정치학도 '원양업키'를 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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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탐구 - 주진우 사조그룹회장
    수산자원 개척…블루오션 누비는 '바다 대통령'
    김영삼 전 대통령은 통영중학교 2학년 때 책상 머리맡에 붓글씨로 이렇게 써 붙였다. '미래의 대통령 김영삼'.친구들이 놀리며 두 번이나 떼어버린 탓에 멱살잡이까지 했던 그는 50여년이 지난 1992년 14대 대선에서 꿈을 이룬다.

    1962년 경북중학교에 들어간 한 소년은 입학 선물로 받은 콘사이스 영어사전 첫 장에 이렇게 적었다. '1991년 13대 대통령 ○○○'.그 소년은 훗날 국회의원은 두 차례 지냈지만,대통령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 대신 다른 분야에서 정상에 올랐다. 국내 최대 규모의 참치 선단을 거느리고,국내에서 가장 많은 수산 가공식품 매출을 올리는 식품 그룹의 총수.사조그룹 주진우 회장(61) 얘기다.

    ◆부친이 차린 출판사가 모태

    주 회장이 스스로를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부르듯 그의 스토리를 풀어갈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선친 주인용 사조산업 창업주다. 일제강점기 때 탁구 국가대표 선수였던 선친은 광복과 더불어 모든 서적과 인쇄물이 일본어에서 한글로 바뀔 것이란 데 착안,출판사를 차린다. 이때 동업자가 당시 대구에서 양말공장을 하던 고(故) 김준성 이수그룹 명예회장이다. 김 명예회장은 회사명을 지어 이 회사에 흔적을 남겼다. 문학도였던 그는 당시 일본에서 유행하던 '신사조'란 말에서 따와 출판사 이름을 '사조사(思潮社)'로 붙였고,'사조'란 이름은 여태껏 이어지고 있다.

    1960~70년대 한국 수산업의 태동 과정에는 유독 출판업자들이 많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대구사범 동기로 5 · 16 군사쿠데타 당시 혁명공약을 인쇄했던 이학수 고려서적 사장이 박 전 대통령의 배려로 고려원양을 세워 수산업에 진출한 뒤 '친구 따라 강남 가듯' 10여명의 출판업자들이 뛰어들었다. 이 사장의 뒤를 이은 사람이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법문사를 운영하던 고 김성수 오양수산(현 사조오양) 회장이었고,김 회장의 권유로 주인용 사조사 창업주 역시 1971년 '사조산업'을 설립,수산업에 진출했다. 삼성출판사,교학사 등도 비슷한 연유로 수산 계열사를 뒀다.

    ◆부지깽이가 바꾼 인생

    경북중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주 회장은 1965년 경기고에 들어간다. 안상수 인천시장,이종구 한나라당 의원,오제세 민주당 의원,정수용 빙그레 부회장 등이 그의 고교 동기다. 그러나 주 회장의 학창 시절은 '버스표' 한 장 때문에 꼬이기 시작한다. '평생 친구'삼기로 한 단짝과 함께 그의 집을 가기 위해 버스를 탔으나 달랑 자기 차비만 내는 '깍쟁이 짓'에 '대구 촌놈'은 커다란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학교 생활에 흥미를 잃은 그는 빨리 대학에 가야겠다는 생각에 검정고시를 통해 고2 때 서울대 정치학과에 응시했으나 낙방한다. 이후 그의 '드림 스쿨'인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하기까지 재수,삼수를 거치며 세 번의 대입 시험을 더 치러야 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당구.사람 머리가 죄다 당구공으로 보이고,볼펜마저 큐대로 느껴졌던 당시 그의 당구 점수는 500점.입시 전날도 새벽 3시까지 당구를 쳤다. 그 구렁에서 빠져나오는 데는 결국 피를 봐야 했다. 흡사 단도박을 위해 손가락을 끊듯 부지깽이로 왼손 중지의 가운뎃마디를 찍고서야 당구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세울 수 있었다.

    당구를 끊고서 그는 서울대 정치학과에 차석 입학한다. 졸업할 때는 서울대 문리대 문과 전체 수석.두 살 아래인 여동생 친구들과 같은 학년으로 대학을 다니게 된 게 너무나도 창피해서 공부를 안 할 수 없었단다. 주영주 이화여대 교육공학과 교수가 그의 여동생이고,한국경제학회장을 지낸 김인준 서울대 교수가 매제다. 주 회장은 그때 경험에서 삶의 평범한 진리 하나를 뼈저리게 체득했다고 한다. '세상은 노력하는 만큼 나오는 거다. '그 이후 그가 평생을 붙들고 사는 채근담의 한 구절."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자신을 지킬 때는 가을 서리처럼 하라)."

    ◆정치학도에서 사업가로의 변신

    대학 졸업 후 잠시 외환은행 행장 비서를 하던 주 회장은 미국 컬럼비아대로 유학을 떠난다. 중학교 시절 세웠던 30대 서울대 교수,40대 국회의원 · 대통령 출마로 이어지는 인생 스케줄의 한 과정으로서다. 그러나 일본 정치사를 주제로 박사 논문을 쓰던 28세 때,당시 57세에 불과하던 부친이 갑자기 뇌일혈로 사망하면서 예기치 않은 변곡점을 만나게 된다. 기숙사 짐을 제대로 싸지도 못한 채 급거 귀국한 그는 장남으로서 가업을 잇게 된다(당시 주 회장의 기숙사방을 이어 들어간 사람이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다).

    당시 그에게 남겨진 것은 원양어선 한 척과 파산한 출판사 '사조사'와 직원 6명,그리고 5억원에 달하는 빚뿐이었다. 주 회장은 "출판사는 포기하더라도 원양업은 어떻게든 유지하라"는 부친의 유언을 받들어 사조산업 살리기에 본격 나선다. 선원들의 급여 현실화와 선단 구성의 효율성을 높여 5년 만에 부채를 다 갚고 1992년에는 금탑산업훈장을 받기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부친이 쌓은 신용 덕에 경매로 넘어간 서울 충정로 5가의 사조빌딩(옛 동아출판사 사옥)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가 30년이 지난 지금도 휴일 없이 매일 사무실에 출근하는 것도 이때부터 생긴 버릇이다.

    주 회장이 주저 없이 '인생 멘토'로 부르는 사람이 있다.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이다. 전남 강진에서 9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김 회장이 서울대 농대에 장학생으로 입학하고도 동생들 뒷바라지를 위해 배를 탄 것을 한없이 높게 평가한다. 또 '와이셔츠 갈아입듯' 주인이 바뀌는 수산업계에서 흔들림 없이 정상을 지키고 있는 그를 '수산업계의 사표'라고 칭한다.

    그러나 주 회장은 김 회장에게 묘한 라이벌 의식도 느낀다. 김 회장이 한신증권(현 한투증권)을 인수한 것에 '쇼크'를 받아 주 회장이 사들인 것이 푸른상호저축은행의 전신인 삼익금고다. 또 김 회장과의 '건곤일척의 참치캔 전쟁'은 결국 주 회장을 정치판으로 내몬 계기가 됐다. 주 회장은 1980년대 말 동원참치를 잡겠다며 당시 연 매출이 40억원 정도인 사조 로하이 참치의 광고비로 100억원을 퍼붓는다. 효과는 즉각적이어서 6개월 만에 점유율이 40%까지 치솟았지만,'동업자끼리 싸우지 말라'는 수산업계 원로들의 '준엄한 꾸지람'을 받아들여 광고전을 포기하면서 정계로 떠난다.

    이때 주 회장은 사조산업을 제외한 푸른상호저축은행,수안보사조리조트 등을 모두 동생 진규씨(작고)에게 나눠줬다. 현재는 고 진규씨의 부인인 구혜원씨(구평회 E1 명예회장의 딸)가 운영하고 있다.

    ◆골프 안 치는 골프장 주인

    주 회장은 15,16대 두 차례에 걸쳐 국회의원(경북 성주 · 고령)을 지낸 뒤 2004년 사조그룹 회장으로 다시 사업에 복귀한다. 그가 가장 주력해온 것은 M&A(인수 · 합병)를 통한 사세 확장이다. 한국제분의 수산 부문을 시작으로 사조해표,사조대림,사조오양 등을 차례로 사들였다. 지난해 그룹 전체 매출은 1조5700억원 규모로 1977년 가업 승계에 나설 때(21억원)보다 700배 이상 늘었다. 올해 매출 목표는 2조원이다. 사조그룹이 인수한 업체 중에는 골프장 캐슬렉스(옛 동서울CC)도 끼어 있다. 그러나 정작 골프장 주인인 그는 골프를 치지 않는다. 젊은 시절 한때 골프에 빠져 주중에도 필드를 나가는 일이 잦아지면서 '안되겠다' 싶어 끊었다고 한다. 물론 당구 때문에 3수까지 한 악몽이 그를 말렸을 게다.

    기업 경영에 있어 주 회장의 좌우명은 '생선은 머리부터 썩는다'는 것이다. 과거 수산업계 2세 모임인 '수심회' 멤버 13명 중 대부분이 부친의 재력을 믿고 방탕한 생활을 하다 현재 건재한 사람은 주 회장과 임우근 한성기업 회장 두 사람 정도뿐이다.

    주 회장에게는 요즘 새로운 꿈이 생겼다. '대통령'은 대통령이되 '바다의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저 푸른바다에는 아직도 주인 없는 식량자원이 무궁무진합니다. 과거에는 수산업 하면 '백정'이 하는 것으로 치부했지요. 이제 '식량자원 개척의 파이어니어'역할이 우리들의 몫입니다. "

    윤성민 기자 smy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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