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는 더 이상 '될성부른 떡잎'이라는 수식어가 필요없다. 경기를 참관한 나지브 라자크 말레이시아 총리가 "노승열의 영감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그는 이미 성공의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유러피언투어 메이뱅크 말레이시안오픈에서 우승한 노승열(19 · 타이틀리스트)은 골퍼들에게 덜 알려진 편이다. 국내보다는 해외 대회에 주로 출전해온 결과다.

7세 때 골프클럽을 잡은 그는 고향인 강원 고성의 해변에서 볼을 치며 꿈을 키워왔다. 중학교 2학년,14세 때이던 2005년에는 한국아마추어골프선수권대회를 역대 최연소로 제패한 데 이어 그 이듬해 한국오픈에서는 '톱10'에 들어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아들의 가능성을 확인한 아버지 노구현씨(49)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아들의 골프백을 메기로 했다. 아들도 아버지의 뒷바라지에 보답하려 했음인지 16세이던 2007년 프로로 전향했다. 2008년엔 아시안투어 차이나클래식에서 우승한 것을 비롯 '톱10'에 여섯 차례나 들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대회에 나올 수 없었기 때문.KPGA는 만 17세 이상이 돼야 멤버 자격을 준다. 노승열이 아시안투어에서 우승했어도 나이가 차지 않아 멤버가 될 수 없고,따라서 대회에도 나올 수 없다는 논리였다. 노승열은 야속하기도 했지만,그 덕분에 국내보다는 해외투어 쪽에 더 눈을 돌릴 수 있었다.

아시안투어 시드를 확보한 노승열은 지난해에는 일본투어 퀄리파잉토너먼트에 응시,1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말레이시안오픈 우승까지….한국선수로는 최경주 양용은에 이어 아시아 · 일본 · 유럽 세 투어의 시드를 갖게 된 것이다.

노승열은 지난 겨울 고향에서 몸을 불리고 스윙을 가다듬었다. 183㎝,76㎏의 호리호리한 체격에서 뿜어져 나오는 드라이버샷은 이번 대회에서 평균 305.3야드를 기록했다. 노구현씨는 "동계훈련과 맞춤클럽 덕분에 거리가 10~15야드 늘었다. 캐리(떠가는 거리)로만 300야드,런(굴러가는 거리)까지 합할 경우 310~320야드는 나간다"고 말했다. 캐리 300야드는 웬만한 페어웨이 벙커는 넘긴다는 얘기로 '장타자' 소리를 들을 만한 거리다. 노승열은 시즌을 앞두고 타이틀리스트 본사에 가서 클럽을 죄다 맞췄다. 드라이버는 로프트 8.5도에 샤프트는 'X'(엑스트라 스티프) 플렉스를 쓴다. 노승열은 "지난해까지 볼이 너무 떴는데 클럽을 맞춘 뒤로 적절한 탄도로 날아가 바람의 영향을 덜 받는다"고 만족해했다.

장타력 말고도 목표까지 70~80야드 남았을 때의 웨지샷은 일품이다. 이번 대회 마지막 홀 세 번째샷도 70야드를 남기고 60도 웨지로 쳤다. 그 샷을 홀 1m 안짝에 떨궈 연장 일보전에서 경기를 마무리한 것이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경기가 안 풀릴 때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다. 정신적으로 더 커야 한다"고 귀띔했다.

노승열은 동계훈련 때 왼쪽으로 감기곤 하는 샷도 교정했다. 8년째 그를 가르쳐 온 최명호 프로,최근 영입한 전현지 프로의 지도 아래 그 샷을 고치는 데 한 달을 투자했다고 한다. "왼손을 잡아두어 손목이 꺾이지 않도록 하고,그 대신 몸통을 돌리는 스윙으로 바꿨지요. 그랬더니 고질병이 고쳐지더군요. 거리는 희생하지 않은 채 방향성이 좋아졌습니다. " 노승열의 설명이다.

노승열은 세 투어를 골라서 나가게 됨에 따라 일정도 더 분주해졌다. "이번 주 브리티시오픈 예선에 나간 뒤 다음 주 상하이에서 열리는 KEB인비테이셔널에 출전합니다. 귀국했다가 4월엔 일본투어 개막전과 제주에서 열리는 발렌타인챔피언십에 잇따라 나갑니다. " 그래도 상반기에는 일본투어에 집중할 생각이다. 일본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 연말 미국PGA투어 퀄리파잉토너먼트 도전 때 유리하기 때문이다.

김경수 기자 ksm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