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새벽 칠레 전역을 강타한 지진은 1960년 1700여명 사망자를 낸 '칠레 대지진' 이래 가장 규모가 크다. 전 세계에서 1990년 이후 20년간 발생한 지진 가운데서도 5번째다. 지난 1월 아이티에서 발생한 규모 7.0의 강진보다 리히터 규모로는 63배,에너지 크기로는 800~1000배 세며,2004년 인도네시아에서 대규모 쓰나미를 일으킨 규모 9.1의 지진과 엇비슷한 위력이었다.

◆수도 산티아고도 전기 · 수도 모두 끓겨

지진 피해는 칠레 중부 도시들에 집중돼 있다. 특히 115㎞ 떨어진 콘셉시온은 15층 짜리 건물이 폭삭 무너져 내리는 등 폭격을 맞은 듯한 양상이다. 다수의 건물에서 가스와 전력선이 끊어지면서 화재가 발생했으며 거리는 잔해들로 뒤덮여있다. 낡은 아파트가 무너지면서 100여명이 갇혀 있기도 하다. 현지 경찰은 식품과 전자제품을 약탈하는 군중들을 막기 위해 최루탄을 사용하고 있다.

잦은 지진에 익숙해져 있던 칠레인들도 엄청난 지진에 경악했다. 진앙에서 325㎞ 떨어진 수도 산티아고의 시민들의 잠옷 차림으로 집이 무너질까봐 밖으로 뛰쳐나와 여진의 공포로 집에도 들어가지 못한 채 발을 동동 구르며 아침을 맞았다. AFP통신의 산티아고 통신원은 "모든 건물들이 마치 젤리가 흔들리는 것처럼 휘청거렸다"고 전했다.

지진으로 고가도로가 파괴되면서 일부 차량은 고가 위에 위험하게 매달려 있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산티아고 예술아카데미 같은 도시의 랜드마크 건물에서도 커다란 건물 잔해가 여기저기 떨어져 내렸고 산티아고 국제공항은 터미널이 파괴돼 폐쇄됐다. 남북으로 긴 칠레 전역을 관통하는 판아메리칸 고속도로도 곳곳이 피해를 입어 도로가 휘고 다리가 끊어지면서 정상적인 통행이 불가능하다. 지진이 일어나자 시민들은 충격과 공포의 눈물 속에 서로의 안부를 물었고,가족들은 식구들이 무사한지 전화를 걸어대기 시작했다.

이번 지진 발생 이후 강진에 해당하는 규모 6.9 지진이 한 차례 발생한 것을 포함, 현재까지 진도 5 이상 여진이 60차례 이상 계속 이어졌다. 28일 오전에도 산티아고 근방에서 규모 6.1의 지진이 발생해 칠레인들을 불안에 떨게 만들었다.

◆내진설계 덕 피해는 적어

칠레는 남서부 태평양의 나즈카판이 남미판에 부딪혀 가라앉는 지역에 있어 지진이 잦다. 잦은 지진 때문에 칠레 정부는 건축물에 강력한 내진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시멘트와 목재로 얼기설기 지어 무너지기 쉽고 언덕의 급경사에 밀집해 지어진 건물 때문에 30만명의 사상자를 낸 아이티와는 다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또 수도 포르토프랭스 바로 옆에서 발생한 아이티와 달리 인구 밀집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지진이 일어난 것도 피해가 상대적으로 작은 이유다. 이번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는 300여명에 이른다.

재난위험 평가업체인 EQECAT는 이번 지진으로 칠레가 국내총생산(GDP)의 10~15%에 해당하는 150억~300억달러에 달하는 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했다.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 당선인은 "올 예산의 2%를 강진에 따른 피해 복구와 재건 활동에 투입하겠다"고 말했다.

◆국제사회 잇따라 지원 의사 밝혀

유엔과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등 국제사회가 잇따라 칠레 지원을 선언하고 나섰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유엔은 칠레 정부와 주민을 지원하려고 준비하고 있다"며 "이번 대지진으로 가족과 친구를 잃은 피해자들에게 애도를 표하며 부상자들이 빨리 회복하기를 바란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우리는 (칠레를) 지원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 주석은 바첼레트 칠레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위로했으며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EU 국제협력 · 인도주의 구호 담당 집행위원은 "우리는 지원할 준비가 돼 있으며 필요할 경우 유럽 차원의 지원을 중재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귀동 기자 claymo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