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코미디언 배삼룡씨가 23일 오전 2시10분 서울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84세.

그는 1990년대 중반부터 흡인성 폐렴으로 투병하다 2007년 6월 한 행사장에서 쓰러져 입원했으며 최근 들어 자가호흡을 하고 가끔 말은 했지만 지인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였다. 1960~1970년대 '비실이'라는 별명과 함께 정상의 인기를 누리던 그는 잇단 사업 실패 등으로 생활고를 겪었다.

1968년 MBC 코미디언으로 데뷔한 그는 1970년대 국내 코미디계의 최고 스타로 큰 인기를 모았다. 특유의 바보 연기와 허약 체질 연기로 남녀노소의 사랑을 받았으며,동갑내기 단짝 구봉서와 콤비를 이뤄 서민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1926년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졸업 후 13세 때 큰형을 따라 일본 도쿄로 건너가 우에노고등학교를 졸업하고,광복 후 귀국해 연예계에 뛰어들었다. 작고 마른 체구,희극인에게 어울리는 마스크를 가진 그는 생전 인터뷰에서 "처음 오디션에서 주위의 단원들이 '뭐 이리 생긴 인간이 다 있어'라고 했다. '저도 악극배우를 하고 싶은데요'라고 어렵게 입을 떼자 웃음바다가 됐다"며 "떨어진 줄 알고 허탈하게 돌아서는데 단장이 내 이름을 물었다. '배창순입니다'라고 대답하자 '어이구,차라리 삼룡이라고 하지'라며 혀를 끌끌찼다. 용이 세 마리라,뭐 나쁠 것도 없었다"고 말했다.

악극으로 연기력을 다진 뒤 방송에 데뷔한 그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사람팔자 시간문제' 등 400여 편의 드라마와 '요절복통 007'(1966) 등의 영화에도 출연했다. 1980년대에는 신군부에 의해 '연예인 숙정대상 1호'로 지목돼 방송출연 정지를 당하기도 했다. 그는 이와 관련,"세 김씨 중 한 명을 내놓고 지지했던 것이 화근이었다"고 밝혔다. 대한민국 연예예술대상 문화훈장 화관장(2003) 등을 받았고,자서전 《한 어릿광대의 눈물젖은 웃음》을 남겼다.

고인의 외아들 동진씨는 "아버지에게는 늘 무대가 우선이었다"며 "그 때문에 어렸을 때는 많이 섭섭했고 학교에 가면 '비실이 아들'이라는 등 놀림을 많이 받아 위축되기도 했지만,그럼에도 항상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했다"고 말했다.

빈소는 아산병원에 차려졌으며,유족으로 아들 동진씨와 딸 경주 · 주영씨가 있다. 발인은 27일 오전.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