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들의 키코(KIKO) 소송은 가슴을 보호하려 방탄조끼를 사서 입고는 팔이랑 다리에 총을 맞았다고 문제 제기를 한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

환헤지 상품인 키코를 둘러싼 기업과 은행 간의 소송에서 은행을 대리해 첫 1심에서 승소를 이끈 법무법인 광장의 고원석 변호사(50)와 여철기 변호사(40)는 키코 소송을 이렇게 비유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8일 키코에 가입했다가 손실을 본 수출 중소기업이 "키코 계약에 따라 은행에 지불한 164억원을 돌려달라"며 은행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에서 "은행의 반환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여 변호사는 "모든 구간의 환율에 대해 기업에 이익을 보장하는 환헤지 상품은 있을 수 없다"며 "기업들이 일정 범위에 대해 환헤지를 하고선 다른 범위에서 손실을 입었다고 소송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키코 소송은 당초 기업에 유리하게 진행되는 듯했다. 기업들이 "키코 계약의 효력을 정지해달라"며 제기한 가처분 소송에서 처음에는 기업들이 잇따라 이겼기 때문이다.

이에 광장팀은 12년 동안 금융분야에서 자문을 해온 오현주 변호사(41)를 법정 프레젠테이션에 투입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법정 프레젠테이션은 재판부를 설득하는 비밀 무기였다.

오 변호사는 "은행이 환율이 급등하기 전 중소기업에 손실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진지하게 권유하는 등 고객 보호 의무를 했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오 변호사는 "담당 판사도 미처 몰랐던 듯 '그거 진짜지? 사실 아니면 책임지라'고 주의를 환기시키기까지 했다"고 전했다.

광장팀은 또 수출 기업들이 외화 현물을 갖고 있기 때문에 환율이 오르면 현물에서 이익이 생겨 키코의 손실이 상쇄된다는 점도 적극 주장했다.

고 변호사는 "다른 사건에서는 도외시됐던 내용들을 부각시키자 법원이 처음으로 기업의 가처분을 기각하고 이번 본안 소송에서도 은행의 손을 들어줬다"고 설명했다.

기업들이 키코의 부당함을 입증하기 위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엥글 미국 뉴욕대 교수까지 동원할 때 변수가 생길 것으로 우려했다고 한다.

고 변호사는 그러나 "엥글 교수가 외환위기 시절 최악의 사정을 전제로 했고 대입한 변수도 가정적이고 극단적이어서 이번 사건에 맞는 관점은 아니었다"고 평가했다.

고 변호사는 "기업들이 고통을 겪은 것은 안타깝지만 계약에 대한 새로운 법률 문화가 정착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