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최장수 사외이사' 물러난다
남대우 SK에너지 사외이사(72)가 다음 달 12일 주주총회를 끝으로 물러난다. 2004년 SK㈜의 사외이사로 선임된 지 6년 만이다.

SK에너지는 12일 이사회를 열고 새 사외이사를 추천,구성할 예정이다. 남 이사는 10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한 기업에 너무 오래 몸담으면 가치 판단의 기준이 흐려질 수 있다"며 "'건전한 경영훈수'라는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작년부터 사외이사를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고 말했다.

남 이사는 국내 사외이사제도의 '산증인'으로 꼽힌다. 사외이사제도가 처음 도입된 지난 1997년 10월 한국가스공사 사외이사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한국조폐공사,풀무원,대한광업진흥공사 등의 사외이사를 역임했다. 사외이사 경력만 13년에 이르는 최장수 사외이사다.

조순 이사(전 경제부총리),오세종 이사 등과 함께 2004년 출범한 SK 사외이사 체제의 창립멤버이며 SK그룹 사외이사제도의 상징적인 인물로 꼽힌다. 남 이사의 퇴진으로 SK그룹의 사외이사 체제가 새 진용을 갖춰 2기 체제로 출범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미스터 쓴소리' '호랑이 이사' 등으로 불린 남 이사는 경영진을 의식하지 않는 소신 발언을 아끼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SK에너지가 2008년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검토했을 때는 이사회에서 반대해 뜻을 관철시키기도 했다.

남 이사는 SK그룹이 소버린자산운용과 경영권 분쟁을 벌였던 2004년 3월 소버린과 SK㈜의 복수추천을 받아 사외이사로 선임돼 주목받았다. 이후 SK그룹이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이사회 중심의 투명경영 기틀을 닦는 과정에서 남 이사의 공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 그룹 안팎의 평가다. SK그룹은 2004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경영혁신을 위해 이른바 '최태원식 지배구조' 체제를 구축하고 사외이사 비율을 70%로 끌어올리는 등 이사회 중심 경영을 추진해왔다.

남 이사는 "'사외이사 윤리강령'을 제정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라고 회고했다. 2004년 사외이사들끼리 비밀리에 작성,최태원 회장에게 직보(直報)해 국내 상장기업 최초로 제정한 윤리강령은 △독립된 이사회가 최고 의사결정기구이며 △이해관계자로부터 투명하고 초연한 입장을 유지하고 △기업가치를 손상시킬 우려가 있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그룹 관계자는 "윤리강령은 단순히 거수기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팽배했던 이사회의 위상을 강화시켜 SK그룹이 지배구조 개선과 투명경영의 기틀을 다지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SK그룹은 이를 계기로 2005년과 지난해 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지원센터로부터 '지배구조 최우수기업'에 선정됐다.

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