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거래소가 코스닥 기업에 대해 상장폐지 실질심사제도를 시행한 결과 퇴출기업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예전에는 한계기업들이 일시적으로 매출을 올리거나 증자 등을 통해 자본잠식률을 낮추면 퇴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지만,이 제도가 도입되면서 이 같은 편법 상장 유지가 어려워졌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거래소는 퇴출 사유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상장 유지에 부적합한 기업을 가려내 퇴출시키기 위해 지난해 2월4일부터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변칙 상장유지 한계기업 철퇴

한국거래소는 7일 지난해 퇴출된 코스닥 기업은 전년보다 44개사 늘어난 63개사(유가증권시장 이전상장 2개 제외)에 달했다고 밝혔다. 이는 투자회사 66곳을 포함,모두 96개사가 퇴출됐던 2000년 이후 가장 많은 것이다.

이 중 실질심사제에 따라 퇴출된 곳만 16개사에 달했다. 여기에 퇴출 기준에 해당된다는 결정이 내려졌지만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통상 6개월 정도인 개선 기간을 부여받아 잠정적으로 퇴출이 미뤄진 곳도 5개사에 이른다. 이 가운데 소예와 MTRON은 개선 기간 중 결국 상장폐지됐다. 이 제도 도입으로 회계법인들의 감사도 깐깐해져 감사의견 거절 사유로 상장 폐지된 기업도 18개사나 됐다.

퇴출이 잠정적으로 미뤄진 5개사와 퇴출 결정후 감사의견 거절로 상장 폐지된 네오라소스를 포함,실질심사에서 퇴출 결정이 내려진 기업은 모두 22개사다.

이 중에는 회계연도를 넘긴 뒤에 자구이행을 단행해 과거였다면 상장 유지가 가능했지만,이 제도가 도입돼 퇴출이 결정된 기업이 7곳에 이른다.

또 경영권이 바뀐 코스닥 기업에서 통과의례처럼 나타났던 횡령 · 배임혐의로 퇴출이 결정된 기업도 5개사나 된다. 상장을 유지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매출을 일으킨 기업 4개사가 퇴출 결정을 받아 3개사가 상장폐지됐다.

◆주요 퇴출기업 유형

퇴출된 코스닥 업체들 중에서는 기존에 영위하던 주력사업이 중단되거나 매각된 경우가 많았다. 이미 판매한 상품의 유지보수 또는 관계사 등에서 나오는 매출로 명맥을 이어오거나,유연탄이나 태양광 등 자원 개발이나 발광다이오드(LED) 부품과 같은 녹색산업에 신규 진출한 곳들이 대부분이었다.

인위적으로 매출을 만들려다보니 내비게이션 및 전자부품 유통업처럼 중간 유통단계 사업에 뛰어드는 사례도 눈에 띄었다.

실질심사 퇴출 1호인 뉴켐진스템셀(옛 온누리에어)도 계란유통업에 뛰어든다는 계획을 내놨지만 거래소는 매출의 실현 가능성을 확인할 수 없다면서 퇴출 결정을 내렸다.

지난해 10월 상장폐지됐던 굿이엠지는 본래 신화 등 연예인 매니지먼트 사업이 주사업이었지만 군 입대로 인한 연예인의 활동 중단 및 주력사업의 자회사 이관,신규사업 추진 부진 등의 악재가 겹치며 주된 영업정지 사유로 실질심사에 넘겨졌다. 실질심사의 고삐가 조여오자 영업양수를 통해 LED사업 진출을 모색했지만 구체적인 사업계획 및 자금조달 방안을 내놓지 못한 탓에 퇴출을 피할 수 없었다.

최대주주를 바꿔가며 상장 유지를 위해 몸부림 치던 통신 기업 네오리소스는 끝내 지난해 9월 코스닥시장에서 퇴출됐다.

2004년과 2006년 자본전액잠식을 나타낸 뒤 다음 해 초 현물출자 유상증자 등 자구행위를 반복하며 상장을 유지했던 네오리소스는 지난해에도 자본 증가로 인식되는 의무전환사채를 발행하며 상장 유지에 나섰지만 이번엔 통하지 않았다.

주력 생산품의 매출은 줄어드는데 인건비와 판매촉진비 등 판매 · 관리비나 영업외비용은 오히려 크게 늘어나는 것도 퇴출 기업의 특징으로 꼽혔다. 매출 원가를 매출로 나눈 매출원가율은 상장폐지 결정 기업들의 경우 2008년 평균 111.6%로 제품을 판매할수록 적자가 커지는 '역마진 구조'로 나타났다. 매출 대비 판관비 비율은 무려 55.9%에 달했다.

관계사나 타인에게 자금을 대여하고 타법인 주식을 비싸게 취득하는 등 큰 돈을 투자해 영업외손실을 불러오는 경우도 많았다. 늘어나는 차입금과 반복적인 유 · 무상 증자,전환사채(CB) 및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으로 부채가 증가하는 경우가 많아 부채비율은 평균 300%를 넘었다. 최대주주 지분율도 평균 10%대로 낮아 경영권 분쟁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지적됐다.

실질심사에 부쳐진 기업의 48.9%가 2000~2002년 사이 증시에 진출한 7~9년차 업체들로 나타났다.

◆올 퇴출기업 더 늘 듯

실질심사제가 2년째로 접어드는 올해는 퇴출 기업이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심사 대상이었던 비엔디는 올 들어 퇴출이 확정돼 이미 증시를 떠났고 글로포스트도 9일 퇴출이 예정돼있다. 또 티이씨 코어비트 동산진흥 등 3개사는 퇴출이 결정됐다. 올 들어서도 8개사가 새로 심사 대상으로 지정돼 이 중 코디콤 비전하이테크 지오엠씨 등 3개사는 퇴출 결정이 내려졌다.

실질심사 실무를 맡고 있는 서종남 거래소 공시제도총괄팀장은 "투자자들과 기업에 어떠한 요소들이 중요한지를 알리게 됐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며 "늦은감이 있지만 앞으로 코스닥시장이 내실있게 성장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영업 부진과 횡령 등으로 얼룩져 투자자들의 재산권을 보호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판단되는 기업들에 대해선 끝까지 찾아내 이 같은 기업들이 발 붙일 수 없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재희/문혜정 기자 joyj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