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장 바꾼 대한항공, 10연승 고공비행
올해 프로 스포츠계의 최대 이변은 'V리그 코트'에 맹폭을 가하고 있는 대한항공의 돌풍이다. 리그 초반 성적 부진으로 감독까지 사퇴한 대한항공이 최근 팀 창단 후 최대인 10연승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리그 개막 때만 해도 삼성화재,현대캐피탈,LIG손해보험,대한항공을 '빅4'로 꼽았다. 대한항공은 기량이 향상된 '꽃미남 세터' 한선수(25)와 풍부한 백업 요원에 후한 점수가 매겨졌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개막 2연패에 빠지는 등 초반부터 난기류가 흘렀다. 급기야 9경기에서 4승5패로 삐거덕거리자 진준택 감독(61)이 물러나고 지난해 팀에 합류했던 신영철 코치(46)가 감독대행으로 지휘봉을 잡았다.

대한항공은 '새로운 기장' 취임(지난해 12월9일) 이후 15경기에서 14승1패를 기록,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배구 코트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 라이벌 팀들에 한 게임도 내주지 않은 건 물론 독주체제를 굳혀가고 있던 삼성화재의 '대항마'로 떠올랐다. 실제 지난 2일 대전에서 끝난 프로배구 4라운드에서 삼성화재를 세트스코어 3-0으로 침몰시켰다. 이로써 1위 삼성화재(20승4패)를 2경기 차로 바짝 추격하게 됐다.

기장 바꾼 대한항공, 10연승 고공비행
대한항공은 2005년 프로배구 출범 이후 5시즌 동안 2~4위에 그치며 한번도 우승컵을 들지 못했다. 하지만 올해는 세터 한선수의 '컴퓨터' 볼 배급과 특유의 '벌떼 공격',신 감독대행의 '믿음 리더십'이 시너지를 내며 우승을 향해 힘차게 비상하고 있다.

배구는 흔히 '세터놀음'이라고 할 만큼 세터가 중요하다. 세터 한선수의 기량 발전은 팀 전력 상승으로 이어졌다. 한선수는 올 시즌 프로 3년차에 50경기 이상 출전하면서 경험 부족이라는 아킬레스건을 극복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현역 시절 '컴퓨터 세터'로 불린 신영철 감독대행이 지도한 이후 빠른 토스로 상대 블로킹을 무력화시키는 등 더욱 급격한 성장곡선을 그리고 있다.

대한항공은 신영수(28),강동진(27),장광균(29) 등 가장 많은 날개 공격수를 보유하고 있다. 또 삼성화재와의 경기에서 공격 성공률 75%를 기록하며 23점을 퍼부은 김학민(27)은 좌우를 가리지 않는 '멀티 플레이어'로 뜨고 있다. 레프트 공격수 강동진은 "경기에서 동료보다 앞서려는 것보다 연습할 때 경쟁이 더 치열하다"며 상호 경쟁을 통해 상승세를 타고 있는 팀 내 분위기를 설명했다. 호재는 더 있다. 대한항공은 5일 프로배구 삼성화재에서 뛰었던 브라질 출신 '괴물' 용병 레안드로 다 실바(27)를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전력이 더 보강될 것이란 관측이다.

신 감독대행의 용병술도 갈수록 빛을 발하고 있다. 그는 감독의 임무가 선수를 통제하는 게 아니라 도와주는 존재라는 철학을 갖고 있다. '감독은 태양이 아니라 은은한 달빛 같은 존재'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가 지휘봉을 쥔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감독과 선수 사이에 벽이 허물어지고 자연스레 신뢰가 쌓였다. '일방통행식 리더십'을 벗어 던지고 선수와 함께 호흡한 결과다.

대한항공은 7일 올스타전에 이어 13일부터 재개되는 5라운드부터 더욱 불꽃 튀는 순위경쟁을 예고했다. '공공의 적'으로 부상한 대한항공이 고공비행을 질주하면서 V리그에 대한 관심도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김진수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