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갤러리] 박성남 '뛰어 노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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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계절이 가고 한 계절이 오는 사이
비닐봉지 안 감자들은 서로를 억세게 부둥켜 안았다
어른 손가락만큼 자라난 독(毒)줄기로 전생까지 끈끈히 묶었다
물컹한 사체에서 기어나와 처절히 흔들리는
아직 나 죽지 않았소, 우리 아직 살아 있소
생명 다한 모체를 필사적으로 파먹으며
비닐봉지 안의 습기와 암흑을 생식하며
저 언어들은 푸르게 살아남았다
싹 난 감자알을 창가에 올려놓으며
본다, 한 계절이 가고 한 계절이 오는 사이
나를 비켜간 저 푸른 인연의 독(毒)
-김지혜 '싹' 전문
입춘(立春)이 동장군을 돌려세우진 못했지만,봄이 저만치 와있다는 걸 넌지시 일러줬다. 사무실 한켠에 키우고 있는 동양란이 산모마냥 꽃망울을 부풀리고 있고, 메말랐던 냇가 버들가지도 속살을 채워가고 있음을.
봄은 습기와 암흑을 생식하며 산란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독(毒)을 품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했나. 푸른 인연의 독이 새 봄을 활짝 열어 제치고 있으니.
남궁 덕 문화부장 nkdu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