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4일 전원회의를 통해 소주업체 담합 혐의에 대한 과징금을 결정했으나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업계는 반발하고 있고 국세청의 행정지도를 둘러싼 논쟁도 이어지고 있다.

◆행정지도 논란 불씨 남겨

소주업계는 공정위의 담합 결정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과징금 액수가 소주업계에 항변 기회를 주기 위해 마련한 사전 심사보고서상의 2263억원에서 272억원으로 대폭 줄긴 했지만 담합한 사실 자체가 없는 상황에서 과징금을 부과한 조치는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 때문에 관련 업체들은 이의신청이나 행정소송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공정위는 1위 업체인 진로에 대해 166억7800만원을 부과한 것을 비롯 무학(26억2700만원) 대선주조(23억8000만원) 보해양조(18억7700만원) 등 11개 소주업체에 과징금을 개별 산정했다. 진로는 "담합한 사실이 없으므로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 결정에 승복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다른 소주업체들은 가격 인상이 국세청의 행정지도에 따라 이뤄진 만큼 공정위의 결정에는 따를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김석호 공정위 카르텔국장은 "공정위가 문제삼는 것은 행정기관의 행정지도를 빌미로 사전 또는 사후에 사업자들이 별도로 합의하는 행위"라며 "국세청과 협의하기 이전부터 소주업체들이 사장단모임인 '천우회'를 통해 가격 인상을 논의하는 등 국세청의 행정지도와는 별개로 담합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공정위가 국세청의 행정지도에 대한 적정성 판단을 유보한 것을 놓고 일각에서는 공정위가 국세청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징계 수위를 대폭 낮춘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과징금 부과 기준 모호

심사보고서에서 밝혔던 2263억원의 과징금이 현실성이 없는 수치였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공정위는 소주업체에 대한 심사 과정에서 담합에 따른 부당 매출이 2조원을 넘어서는 것으로 봤다. 이에 따라 부당 매출의 최고 10%까지 매길 수 있는 과징금 예상치도 2263억원으로 산정됐다. 하지만 전원회의는 부당 매출 규모를 1조2000억원으로 판단했다. 롯데주류가 인수한 두산의 '처음처럼' 등 일부 제품의 경우 심사보고서 내용과 달리 독자적인 가격정책을 고수한 것이 인정됐기 때문이다.

과징금이 줄어든 또 다른 이유는 전원회의가 과징금 부과율을 5.9%로 낮춰 적용한 데 따른 것이다. 지난해부터 소주업체들이 정부의 물가안정책에 부응한 점도 '정상참작'이 됐다. 이에 대해 공정법 전문 A변호사는 "공정위는 심사보고서와 전원회의의 결정을 구분하려고 하지만 심사보고서 또한 공정위 바깥으로 나가는 '공문'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작성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정위의 성과중심주의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과징금 자체가 부당한 것은 문제지만 어떻게 갑자기 10분의 1로 줄어들 수가 있느냐"며 "공정위가 무리하게 적발 위주의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엉터리 행정"이라고 꼬집었다.

박신영/최진석 기자 nyusos@hankyung.com

◆국세청의 행정지도=주세법 시행령 50조는 '국세청장은 주세 보전,주류 유통 관리를 위해 주류 제조자 또는 주류 판매업자에 대해 주류의 출고가격 및 가격 변경 신고 등에 관해 명령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세청은 이에 따라 12개 주류 중 생필품으로 간주되는 소주 값 인상 등에 한해 관행적으로 업계의 의견을 듣는다. 업계는 국세청과 상의해서 정해지는 가격을 행정지도로 간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