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3일 아시아 국가들과 환율 · 무역전쟁을 벌이겠다고 사실상 선언한 것은 미국 내 심각한 일자리 위기가 배경이다. 그는 지난달 첫 국정연설에서 일자리 만들기를 올해 최우선 정책으로 정하고 향후 5년간 수출을 두 배로 늘려 일자리 200만개를 창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최우선 표적으로 아시아와 중국을 잡은 것이다.

◆180도 달라진 미국

오바마 정부는 취임 이후 지난 1년간 중국 위안화 환율문제에 대해 극도로 신중했다. 티모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이 취임 직전인 지난해 1월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보고 있다"고 발언했다가 "(보유 중인) 미 채권의 투자가치를 따져봐야겠다"는 원자바오 총리의 말 한마디에 입을 닫아야 했다. 오바마 대통령도 지난해 11월 아시아를 순방하기 직전 "중국에 가서 위안화 문제를 따지겠다"고 했지만 엄포에 그쳤다.

그런 그가 이날 민주당 상원의원들의 정책위원회 모임에서 "중국 등 다른 국가에 계속 압박을 가해 훨씬 터프하게 나가겠다"면서 "대응해야 할 도전과제 중 하나가 환율 문제"라고 적시했다. 미국의 공세가 본격화된 것은 결국 오바마 대통령의 다급해진 '국내 일자리 안보'와 직결된다는 분석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실제로 "아시아 수출비중을 1%포인트만 높여도 미국에서 수십만,수백만개의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에 불이익을 안겨주는 환율 문제가 해결되면 글로벌 경쟁에서 경쟁국들과 붙어볼 만하다는 자신감을 피력했다. 그는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은 우리가 한 국가로서 또는 한 당(黨)으로서 국제 경쟁에서 한발 물러서는 것"이라며 "우리는 지구상 최고의 근로자와 지구상 가장 혁신적인 제품을 갖고 있기 때문에 공정한 경기장에서 경쟁을 벌일 수 있다면 누구도 우리를 꺾을 수 없다"고 자신했다.

◆전방위 환율 · 통상 전쟁 예고

오바마 대통령의 이날 발언을 뜯어보면 앞으로 아시아 국가들과의 살벌한 환율 · 통상전쟁이 벌어질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미국이 올해 중국과의 전략경제대화에서 중국의 환율정책이 우선적인 아젠다가 될 것으로 중국 측에 알렸다"고 전했다. 달러에 대한 위안화 환율은 지난 1년여 동안 달러당 6.83위안 안팎에 고정돼 '정부 관리 환율'이란 비판을 받아왔다.

더욱이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표심을 염두에 둔 미 의회의 압박도 오바마의 등을 떠밀고 있다. 의원들은 위안화의 저평가에 따른 인위적인 수출 경쟁력을 보조금 지급과 동일하게 보고 있다. 스펙터 의원은 이날 "중국은 보조금과 덤핑으로 국제법을 어기고 있는 산적질과 같은 무역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찰스 슈머 의원은 "중국이 미국을 불공정하게 대우했는데 아무도 속시원히 해결하지 않았다"면서 "행정부가 안 나서면 의회가 강력하게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장 가이트너 장관은 5일 열리는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 회의에서 위안화 환율문제를 다룰 것이라고 밝혔다. 오는 4월에는 미국 정부가 중국을 공식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지 주목된다.

워싱턴 싱크탱크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의 프레드 버그스텐 소장은 이날 미국의 수출 확대와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통화정책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문했다. 홍콩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대만 등지의 통화도 상대적으로 평가절하돼 있다고 지적했다.

◆中 "압력은 문제 해결 도움 안돼"

마자오쉬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4일 정례브리핑에서 "비판과 압력 행사는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미국이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무역마찰 문제를 직시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마 대변인은 "위안화 환율 문제가 중국과 미국 간 무역불균형의 주요 원인이 아니다"며 압력에 의한 위안화 절상은 없을 것임을 시사했다. 하지만 중국의 싱크탱크인 사회과학원 장밍 금융연구소 부소장은 이날 "오는 3월 이전에 위안화가 절상될 가능성이 있고 올해 5% 정도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조주현/워싱턴=김홍열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