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소주값 담합 혐의를 받은 11개 소주업체를 제재하는 과정에서 과징금 액수가 대폭 감경된 것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공정위는 소주업체에 대한 징계수위가 결정된 3일 밤 전원회의에서 심사보고서상 2천263억원이었던 과징금 액수를 10분의 1수준인 272억원으로 낮췄다.

공정위는 과징금 경감 사유에 대해 "가격 인상에 따른 매출액과 부당이득 규모를 고려했다"고 밝혔다.

소주업체에 대한 심사과정에서는 담합에 따른 매출액이 2조원을 넘어서는 것으로 봤지만, 전원회의에선 관련 매출규모를 1조2천억원으로 판단했다는 것.
또한 공정위 관계자는 "소주업체들은 가격을 마음대로 올리고 싶었지만, 정부의 물가안정책에 부응해서 가격을 올렸기 때문에 부당이득이 얼마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업체들이 담합을 통해 가격을 인상한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가격인상 요인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부당이득 규모가 당초 예상만큼 크지 않다는 이야기다.

이와 함께 공정위는 심사과정에선 과징금 부과율을 최대치인 매출액의 10%로 상정한 반면, 전원회의에선 과징금 부과율을 낮춰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한 공정위 고위관계자는 "소주업체들의 가격인상 과정에서 국세청의 행정지도가 있었던 측면을 고려해 과징금 부과율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 전원회의에서 제기됐다"고 전했다.

실제로 국세청은 공정위에 대해 `진로의 소주가격 인상요청이 있으면 이에 대해 검토, 협의 후 가격인상을 승인해주고 있다.

다른 업체들은 진로의 가격인상을 보고 각사의 경쟁력을 고려해 인상률과 인상시기를 결정하고 있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소주업체들은 "국세청의 행정지도에 따라 가격을 일제히 인상했기 때문에 외형상 담합과 유사해 보일 뿐 실제 업체 간 가격합의는 없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공정위가 국세청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징계수위를 대폭 낮춘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국세청과 소주업체들이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공정위가 수천억원대의 과징금을 부과할 경우 정부기관끼리 충돌하는 듯한 모양새를 보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과징금 액수를 대폭 낮춘 것이 아니냐는 것.
그러나 공정위는 국세청의 행정지도는 이번 조치와는 별개라는 입장이다.

공정위는 "국세청이 진로의 소주가격 인상요청을 승인해 준 사실은 있지만 공정위가 문제삼는 것은 행정지도를 빌미로 사업자들이 별도로 합의하는 행위"라며 "진로가 국세청과 협의하기 이전부터 소주업체들은 사장단 모임을 통해 가격인상을 논의하는 등 행정지도와는 별개로 담합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한편 공정위는 향후 소주업체들에 발송할 의결서엔 국세청 행정지도의 근거가 되는 주세법 조항의 문제점을 언급할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연합뉴스) 고일환 기자 kom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