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화면이 반짝반짝 빛나는데 LED(발광다이오드)로 만든 건가요?"

지난달 28일 대전 유성구 KAIST 강의실.LG전자 MC연구소 조영민 책임연구원의 휴대폰 강의가 한창이었다. 30명의 학생들은 평소 휴대폰에 대해 궁금했던 질문들을 쏟아냈다. 피부색은 제 각각이었지만 호기심과 열정어린 눈빛은 똑같았다. 한 여학생은 바(bar),폴더(folder),슬라이드(slide) 등 휴대폰의 형태별 특성을 그림을 그려가며 메모했다. "나중에 커서 휴대폰을 연구하고 싶은 사람 있나요?" 조 연구원의 질문에 절반에 가까운 아이들이 손을 번쩍 들었다.

◆다문화 가정의 인재들

이날 겨울캠프에 참가한 학생들은 'LG와 함께하는 사랑의 다문화학교' 1기생들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중 한 명이 외국인이라는 것이 이들의 공통점이다. 부모의 국적은 러시아 네덜란드 몽골 등으로 다양하다.

LG는 다문화가정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지난해 11월 다문화학교를 열었다. 과학 언어 등 재능이 뛰어난 70명의 청소년들에게 2년간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이들은 서류심사와 선발캠프(합숙 면접)를 거쳐 뽑았다. 과학인재 양성과정에 뽑힌 30명은 KAIST에서,언어인재 양성과정에 뽑힌 40명은 한국외대 용인캠퍼스에서 월 1~2차례 수업을 듣는다. 학생들은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다양하다. ㈜LG 관계자는 "두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다문화가정 자녀들을 글로벌 인재로 육성하기 위해 사회공헌 활동 차원에서 이 사업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과학인재 양성과정에 참여한 학생들은 장래 희망이 뚜렷하고 구체적이었다.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송건군(12)은 생태학자로서 국제연합환경계획(UNEP) 한국위원회 회원으로 활동하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다. 송군은 "각시붕어나 버들붕어처럼 예쁜 물고기를 관상어로 개발해 수출하고 싶다. 배스나 블루길 등 국내 생태를 교란하는 외래종 물고기를 퇴치하는 일에도 관심이 많다"며 벌써부터 전문가적인 식견을 나타냈다.

◆동료애와 자신감 싹터

점심식사를 마치고 시작된 천연 염색 수업시간.학생들의 옷이 군데군데 노란 치자색으로 물들었다. 처음 본 천연 염색재료가 신기해 옆 친구들과 장난을 친 결과였다. 한국인 아버지와 러시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홍요찬군(13)은 아예 염색한 천을 가슴에 붙이고 다녔다.

이번 수업의 목적은 같은 색깔의 색소도 매염제(섬유를 염색할 때 쓰이는 매개물질)가 산성이냐 염기성이냐에 따라 색깔이 달라진다는 점을 실습으로 배우는 것.수업이 끝날 무렵,학생들은 이미 염색 전문가가 돼 있었다. 인도계 아버지를 둔 바수 혜나양(12)에게 "천을 매염제에 담근 뒤 염료를 입혀야 하느냐"고 물었다. 곧바로 똑 부러진 대답이 돌아왔다. "반대예요. 매염제는 나중에 써요. 수업 안 들으셨어요?"

염색 수업을 진행한 정현주씨(KAIST 경영과학 4학년)는 "다문화가정 자녀들로만 반을 꾸려 수업을 진행하면 아이들의 수업 태도가 훨씬 더 적극적으로 바뀌어 수업이 활기를 띤다"며 "공통점이 있어서인지 아이들끼리 친해지는 속도도 훨씬 빠르다"고 말했다.

장난감 회사인 레고에서 만든 장난감 로봇 '마인드스톰'을 이용해 로봇공학의 기초 원리를 배우는 수업도 인기를 끌었다. 파나마료브 다니엘군(15)은 "평소 로봇축구를 보면서 어떻게 로봇이 움직이는지 궁금했다"며 "직접 로봇을 만들어 보니 궁금했던 점들을 대부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외대와 KAIST 교수진이 강사로

과학인재 양성과정 학생들은 앞으로 매달 마지막 토요일 대전 KAIST를 찾는다. 정식 수업은 3월 말부터 시작된다. 이날 수업은 정식 수업을 앞두고 열린 사전 수업의 일환이다. 실험과 실습을 통해 실생활과 밀접한 과학의 원리를 학생들에게 알릴 계획이라는 게 KAIST 교수진들의 설명이다. 학생들은 집에 있는 동안은 온라인을 통해 각종 과학원리에 대한 수업을 받는다. 이런 식으로 2년 동안 과학원리를 배워 과학영재로 커 나가게 된다. LG그룹 관계자는 "LG 계열사 임직원들도 특강 형태로 강의에 참여한다"며 "KAIST에서 배운 원리가 현실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중점적으로 가르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언어인재 양성과정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수업은 매달 두 번째,네 번째 토요일 한국외대 서울캠퍼스에서 열린다. 과목은 중국어와 베트남어다. 전통 춤과 노래 등을 통해 재미있게 언어를 배울 수 있도록 커리큘럼을 구성했다고 LG 측은 밝혔다. 과학인재 양성과정처럼 한국외대 교수들이 직접 학생들을 가르친다. 학생들로서는 다문화가정에 대한 사회의 편견을 떨쳐버리고 과학이나 언어인재로 우뚝 설 소중한 기회를 얻은 셈이다.

대전=송형석 기자/이동수 인턴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