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 영화 '가문의 영광'과 히트 드라마 '파리의 연인' 등을 통해 '귀여운 여인'으로 각인됐던 김정은(34).그는 변신의 귀재다. 5년 전 멜로물 '사랑니'(2005년)에서 고교생을 사랑하는 수학교사로 등장하면서 '귀여운 여인'을 벗어던졌다. 당시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평론가들로부터는 격찬을 받았다. 이후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8년)에서 노장 선수들이 주축인 핸드볼 대표팀을 이끌고 감동의 스포츠 드라마를 펼치는 지도자 역으로 나서 큰 인기를 끌었다.

28일 개봉하는 영화 '식객:김치전쟁'(감독 백동훈)은 1996년 데뷔한 김정은이 숨겨왔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다. 따스하고 사랑받는 여인이 아니라 냉철한 완벽주의자로서의 모습이다. 25일 서울 인사동의 한 호텔에서 그녀와 만나 연기 변신에 대한 솔직토크를 했다.

"서른 살에 접어들면서 선택한 작품이 '사랑니'였어요. 여자에게 서른 살은 실수를 인지하는 나이라고 생각해요. 20대까지는 실수해도 용서받을 수 있지만 30대는 더이상 안되는 거죠.나이를 먹으면 사람이 달라지게 마련인 데,작품 속 저는 언제나 제자리 걸음이었어요. 마치 본드로 붙여놓은 듯이 늘 반짝이는 옷만 입었던 거죠.그래서 누더기를 입어보고 싶어졌어요. 배우 생활을 오래하려면 이런 저런 경험을 다 해야 하잖아요. "

그녀는 당시 스크린 속에서 짧은 시간이나마 수학교사처럼 보이기 위해 실제로 수학 정석을 다시 공부했다. 시선은 학생들을 향한 채 팔을 뒤로 뻗어 흑판에 글씨를 쓰는 것도 훈련했다. 몸으로 익혀야 캐릭터를 제대로 만들 수 있다는 성격파 배우들의 매뉴얼을 따라했던 것이다. '우생순'에서는 체력적으로 힘들 정도로 연습해 대역 없이 핸드볼 경기의 모든 장면을 찍었다.

"로맨틱코미디의 과장된 주인공과 정반대 이미지를 연기했을 때 관객들에게 저를 이해시키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것 역시 다른 제 모습인 데 말이죠.이번 영화 속 장은 역은 기존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른 캐릭터의 소유자죠.인간미라곤 거의 없는 콤플렉스 덩어리,독단적인 요리 천재 역이니까요. 생애 가장 어려운 연기였어요. "

'식객:김치전쟁'은 요정 '춘양각'을 둘러싼 두 남녀의 요리 대결을 그려낸다. 일본에서 성공한 셰프로 귀국한 장은은 전통 요정을 헐고 새 요리점을 내려하지만 성찬(진구)이 이를 저지하고자 맞선다. 개인적으로 장은은 어린 시절 상처로 10년간 엄마(이보희)와 얼굴도 마주치지 않았다. 친구도 없는,고독한 인물의 전형이다.

"천재로 살아본 적 없는 저로서는 얘(장은)가 나와 비슷한 게 뭘까 생각해 봤어요. 그런데 내 배우 생활과 비슷한 부분에서 접점을 찾았어요. 살다보면 매사 속내를 다 끄집어낼 수 없잖아요. 겉으로 드러나는 장은의 행동은 비록 나쁘지만 관객들에게 동정을 받아내야 할 부분도 있어요. "

그녀는 요리 천재 역을 위해 3개월간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요리 학원을 다녔다. 칼로 초대형 무 5통씩을 매일 썰었다. 다 썰고 나면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을 정도였다. 각종 전과 구절판,신선로 김치 등도 만들었다.

"몸에 익숙해지니까 요리 연기가 편해지더군요. 촬영장에서도 칼을 쥐고 있을 때 오히려 안심이 됐어요. 요리라곤 기껏 국과 찌개 정도 끓이던 저였지만 이제는 김치를 담글 정도가 됐어요. "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