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개봉한 영화 '미녀는 괴로워'는 우리 사회의 성형수술 열풍에 대해 노골적으로 문제 제기를 했다.

주인공 '한나'(김아중)는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졌지만 뚱뚱하고 못생긴 얼굴 탓에 다른 가수의 노래를 대신 불러주는 신세였다. 그런 한나가 대대적인 전신 성형수술 뒤 스타가수 '제니'로 거듭난다.

한나가 성형수술 후 접촉사고를 냈을 때 피해자인 택시기사(이범수)는 이마의 피를 태연하게 닦으며 "하나도 안 아파요"라며 능청을 떨고,달려온 경찰(류승수)은 오히려 주변의 차들을 보고 "비켜가라"고 나무란다. 요즘 유행어처럼 '예쁜 사람만 대접받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푸념하면서도 '일단 예쁘고 볼 일'이라고 여기는 세태 그대로다.

외모에 관심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날이 발달해 가는 성형수술 덕에 미모를 타고나지 못한 여성들은 후천적으로라도 이를 쟁취하는 게 가능해진 시대다. 그렇다면 성형수술에 가장 적극적인 이들은 누구일까. 전문의들은 "20대의 탄력을 잃어가는 경제력 있는 30대 골드미스"라고 입을 모은다. 성형 경험이 있는 골드미스 4명의 속내를 들여다봤다.

◆"성형은 업그레이드 … 지방흡입은 새 스케치북"

서울 청담동에서 피부관리숍을 운영하는 강지민씨(34)는 이른바 '성형중독자'다. 하지만 강씨는 주위의 만류를 아랑곳하지 않는다. 중학생 때 별명이 '아줌마'였을 정도로 후덕한 몸매를 유지하던 그녀가 '퀸카'로 거듭난 이유가 성형이기 때문이다.

강씨는 눈,코 수술은 물론 전신 지방흡입과 귀족성형까지 마친 상태다. 중학교 때 여드름 자국이 많았지만 몇 번에 걸친 대공사 끝에 지금은 '고현정 피부'란 소리를 듣는다. 중 · 고교 때 친구들은 그녀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다. 강씨는 '성형은 업그레이드,지흡(지방흡입)은 새 스케치북'이라고 강조했다.

"다이어트 실패로 인해 몸매가 망가진 사람은 이미 '망친 스케치북'이에요. 아무리 덧그림을 그려봤자 소용이 없는 거죠.지흡은 '새 스케치북'을 펼치는 것과 같아요. 여기에 성공적으로 새 그림을 그렸다면 계속 업그레이드해 줄 필요가 있죠."

강씨는 또 성형을 생각 중이다. 빅토리아 베컴처럼 성형수술도 유행이 지나면 다시 하기 때문이란다. 코는 3년 주기로 새로 한다. 강씨는 "원래 가슴은 좀 있는 편인데 30대 중반이 되니 자꾸 처진다"며 "가슴 축소수술을 잘 하는 병원을 알아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성형에 부정적이던 강씨의 친구도 그의 변신만은 부러워 한다. "지민이 한테는 남자들이 줄을 서요. 남자는 안 부러워도 너무 예뻐져 '부럽다'는 생각뿐이죠.성형을 혐오했지만 '나라고 안 될 거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확 고쳤더니 자신감+애인이 생겼어요"

성형수술을 자신감을 강화시키는 계기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 교육업체 회계팀에서 일하는 박상희씨(35)는 제2의 황금기를 맞았다고 자부했다.

박씨는 1년반 전 코수술에 이어 작년 초 지방흡입을 했다. "지방흡입은 허벅지와 배,등쪽과 팔 부위를 했어요. 코는 200만원,지방흡입은 1200만원이 들었죠.하지만 효과는 그 이상이에요. 지흡 수술 후 몸무게가 4~5㎏ 줄었는데 허벅지와 옆구리 살이 해결되니 사진도 찍고 옷도 마음껏 입을 수 있어요. 이젠 수시로 거울을 보는 게 취미가 됐어요. (웃음)"

수술 전만 해도 매사에 자신감이 없고 옷도 입는 게 아니라 가리기에 급급했던 박씨는 수술 후 6개월 만에 지금의 애인을 만났다. 박씨가 '모태 솔로'에서 벗어난 뒤 애당초 성형을 만류하던 친구들 중 2명이 벌써 성형수술대에 올랐고,1명은 지흡수술 예약을 마친 상태다.

최근에는 보톡스 주사를 맞거나 '앞광대''메틸이마' 등 칼을 대지않는 '쁘띠성형'이 최대 관심사라고 한다. 간편하면서도 효과적인 피부미용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추세다.

여성 직장인 중에는 점심시간에 병원이나 피부관리숍에 들러 주사를 맞고 오는 이들도 있다. 호텔리어인 노혜경씨(36)도 2년 전부터 6개월마다 턱에 보톡스 주사를 맞는다. 노씨는 "보톡스의 원조는 프랑스 디스포트사지만 현재는 미국의 엘러건사도 대중적으로 쓰인다"는 등 해박한 지식을 늘어놓을 정도.사각턱도 아니면서 보톡스를 꼬박꼬박 맞는 이유를 묻자 답변이 단순 명쾌하다. "나이 들어서도 길에서 스쳐 지나간 남자가 뒤돌아 보게 하고 싶어서요. "

◆'내면의 아름다움' 아무리 강조해도 속내는…

일각에선 "성형이 일종의 명품가방처럼 돼버렸다"고 꼬집기도 한다. 사람들이 다 들고 다니면 '나도 하나 들어야겠다'는 것과 같은 모방심리가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탤런트 김태희가 'V라인'을 강조한 뒤 'V성형수술'이 급격하게 늘었다.

인터넷에는 최신 유행하는 성형 정보를 공유하는 커뮤니티인 '성형수술 후 예뻐진 사람들'(약칭 성예사)까지 생겼을 정도다. 인터뷰를 한 4명의 골드미스들은 '사회가 성형을 강요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공감했다. 공기업에 다니는 김선미씨(33)는 자신의 눈에 불만이 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이 술만 마시면 "눈 떠"라고 해 고민 끝에 쌍꺼풀 수술을 했다. "작은 눈은 아니었는데 사람들이 계속 그러니 정말 제 눈이 싫어지는 거에요. '수술해도 고민,안해도 고민'일 바에야 '차라리 하고 고민하자'며 병원으로 향했죠."

이준복 메가성형외과 원장은 "성형에 대한 두려움이 줄었고 30대 이상 여성들은 경제력까지 갖춰'숙원사업'을 실천하기 위해 병원을 찾는다"면서 "하지만 일부 고객들은 무조건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해달라고 요구하는데 자신의 신체 조건을 감안해야 부작용을 피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명길 듀오 대표연애강사는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면서 능력이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여성들이 늘고 있다"며 "성형을 통해 자기 만족감을 높이는 것보다 일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찾는 이들이 증가한다는 것은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