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에게 듣는다] 이진우 NH투자선물 리서치센터장, "환율 바닥권…지금은 달러 팔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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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원·달러 환율 약세는 막대한 자본수지 흑자때문
중기·개인 환헤지는 거래소 상장 통화선물거래로
중기·개인 환헤지는 거래소 상장 통화선물거래로
"원 · 달러 환율이 추가로 하락한다고 해도 1100원 아래로 내려가기에는 아직 이릅니다. 달러가 필요하다면 미루지 말고 사야 할 때입니다. "
새해 시작과 함께 원 · 달러 환율은 하락세를 거듭해 한때 1110원대까지 떨어졌다. 최근 반등하고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하락세를 지속할 것이라는 게 대부분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그러나 '환율 상승론의 최고수'를 자처하며 소수 의견을 고집하는 사람이 있다. 이진우 NH투자선물 리서치센터장이다.
이 센터장은 최근 외환시장의 흐름에 대해 '환율이 바닥을 찾는 과정'이라고 진단했다. 올 들어 환율이 예상외로 많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추가 하락의 여지는 크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환율이 많이 하락한 만큼 추세가 바뀔 경우 상승폭도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는 "가격이 오를 때는 한없이 오를 것 같고 내릴 땐 한없이 내릴 것 같지만 어느 순간 시장은 돌아선다"며 "개인 투자자들과 기업이 손실을 입지 않으려면 말려들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센터장은 환율 반등을 점치는 첫 번째 이유로 자본수지의 불안정성을 꼽았다. 그는 "지난해 원 · 달러 환율 하락을 이끈 것은 경상수지 흑자보다는 자본수지 흑자였다"고 분석했다. 외국인의 국내 주식 및 채권 투자가 증가하면서 달러가 대규모로 유입돼 환율이 떨어졌다는 설명이다. 그는 "국내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한 외국인 자금은 언젠가는 차익을 실현하고 빠져나갈 돈"이라며 "이 자금이 유출되기 시작하면 환율은 다시 급등세로 돌아설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지난해 400억달러를 넘었고 올해도 200억달러가량으로 전망하는 경상수지 흑자는 환율 하락세를 주도할 만한 요인이 못 된다고 지적했다. 이 센터장은 "지난해 경상수지 흑자의 상당 부분은 이미 지난 2006~2008년 수출기업들의 선물환 매도를 통해 외환시장에 반영됐던 부분"이라며 "경상수지 흑자가 액면 그대로 외환시장의 달러 공급 우위로 나타나지는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 센터장은 또 "지난해부터 전 세계적으로 투기적인 달러 매도가 많이 이뤄졌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든 투자자들이 달러 약세 전망에 근거해 달러를 팔고 원자재나 신흥국 통화를 사들이다 보니 이제 시장에 더 이상 팔 달러가 남아 있지 않고 달러를 살 사람만 가득해졌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의 지급준비율 인상 이후 전 세계 주가가 출렁거리고 미국의 출구 전략이 언급될 때마다 달러가 강세를 보이는 게 왜 그렇겠느냐"며 "시장이 한 쪽으로 기울어 있으니 작은 악재에도 반응이 크게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 센터장은 "'무릎에서 사고 어깨에서 팔라'는 말은 주식 투자만이 아니라 외환거래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강조했다. 그의 예상대로 원 · 달러 환율의 바닥이 멀지 않았다면 현 시점에서 환율의 추가 하락을 점치고 달러 매입을 미루는 것은 주가가 바닥일 때 주식을 사겠다며 욕심을 부리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반대로 환율이 더 떨어지기 전에 달러를 팔자는 것은 이른바 '상투'를 잡는 것과 유사하다.
그는 "수출입 기업이나 달러가 필요한 개인이 외환을 거래하는 방식은 외환딜러나 투기세력의 거래 방식과 달라야 한다"며 "추가 하락 여지가 크지 않은 상황에서 달러 매입을 미루고 달러 매도를 서두르는 것은 이미 투기"라고 말했다.
이 센터장은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가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환헤지 수단으로 거래소에 상장된 통화선물 거래를 권했다. 통화선물은 현물환 거래에 대응하는 선물환 거래를 취함으로써 환율이 오르든 내리든 이로 인한 손실을 입지 않도록 한 상품이다.
예를 들어 A기업이 100만달러어치의 원자재를 수입하고 대금을 한 달 후 지불하기로 했는데 그동안 환율이 100원 올라 손해를 볼 것 같다면 1개월물 원 · 달러 선물 100만달러를 사놓는 것이다. 실제로 환율이 100원 오르면 이 기업은 수입대금이 1억원 비싸져 손해를 보지만 선물거래에서는 1억원의 차익을 챙겨 전체적으로는 손실을 입지 않는다. 반대로 환율이 떨어진다고 해도 이 기업은 손해를 보지 않는다. 선물 거래에서는 손실이 발생하지만 환율이 떨어진 만큼 실제 수입대금은 줄기 때문이다.
이 센터장은 외환시장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조폭'이라는 필명으로 더 유명하다. 1990년대 초 'FX마켓'이라는 인터넷 사이트에 환율 전망에 관한 글을 올리면서 재미 삼아 쓰기 시작한 아이디(ID)가 별명으로 굳어졌다. 별명에 걸맞게 그는 시장을 분석할 때도 거침없고 직설적인 표현을 사용한다. 그리스의 재정적자 문제로 유로화가 급락한 것을 두고 '그리스발 악재에 유로화의 턱이 돌아갔다'고 말하는 식이다.
이 센터장은 1990년 한국종금에 입사해 1992년 외환딜러로 시장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한화종금과 농협중앙회에서 딜러 생활을 했고 2002년부터는 NH선물에서 외환 애널리스트로 변신해 시황을 분석하고 있다.
글=유승호/사진=정동헌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