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인사에서 승진한 한 시중은행의 K모 부행장은 인사가 난 지 한 달이 다 되도록 아직까지 연봉 계약을 체결하지 못했다. 차기 회장 선임과 사전검사를 둘러싸고 지난 연말 불거진 금융당국과 KB금융 간의 마찰이 계속되면서 금융권이 이처럼 금융당국의 눈치만 보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임원 급여 놓고 눈치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고통 분담 차원에서 작년 은행장과 임원들의 연봉을 삭감했던 시중은행들은 삭감된 임금의 원상 회복 문제를 놓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은행 내에서는 급여 원상 복구에 대한 기대감이 높지만 금융당국의 눈치를 보느라 결정을 미루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은행들은 지난해 행장 연봉을 20~30%,부행장과 본부장은 10% 각각 삭감했지만 올해 임원들의 급여 수준을 어떻게 할지 검토조차 못하고 있다. 과거 임원들에게 줬던 스톡옵션(주식매입 선택권)이나 스톡그랜트(주식 보너스)도 작년에는 모두 취소했으나 올해 다시 부활시킬지를 놓고서도 금융당국의 메시지만 기다리는 형국이다. 지난해 일제히 5%를 반납했던 일반 직원들의 급여도 어떻게 할지 논의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임원 연봉이나 직원 급여,연차 휴가 의무 사용 등에 대해선 누구도 어떻게 하자는 식으로 얘기를 못하는 분위기"라며 "결국 당국이 일정한 지침을 제시한 뒤에야 논의가 이뤄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배당 규모도 고민

은행들은 올해 주주들에 대한 배당을 놓고도 금융당국의 의중만 살피고 있다. 일단 작년 실적 집계가 끝나면 금융지주사와 은행들은 폭은 크지 않지만 대부분 배당을 실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배당 규모다.

금융당국이 여전히 배당에 대해 부정적인 기류를 갖고 있어 예년 수준으로 해야 할지,최소한의 폭에 그쳐야 할지 구체적인 논의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당국에서는 은행들의 자율에 맡기겠다고 하지만 막상 그렇게 할 경우 나중에 주주들에게 퍼줬다는 비판이 나올까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지배구조 개선문제도 골치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온 주주총회에서 은행 및 지주사의 경영진 구성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고민거리다. 우선 금융당국이 '사외이사 제도 개선 방안'을 통해 요구하고 있는 '최고경영자(CEO)와 이사회 의장 분리' 문제가 핫이슈다.

선임 사외이사제를 도입하면 겸임도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분리'와 '겸임' 중에서 순전히 자율적으로 선택해도 되는 것인지,아니면 '분리'에 대한 강렬한 희망을 내포하고 있는 것인지 알지 못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정부가 대주주인 우리금융지주와 우리은행 등 계열사의 경우 금융권 내에서 모범 사례가 돼야 한다는 논리 때문에 더욱 마음을 졸일 수밖에 없다. 신한지주는 1991년 신한은행장 취임 이후 20년째 CEO를 맡고 있는 라응찬 회장의 연임이 걸려 있어 당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에 신경이 집중돼 있다.

이 밖에 은행들은 다음 달 출시할 새로운 주택담보대출 상품의 가산금리 수준을 결정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금융당국이 일정한 지침을 제시하길 기다리고 있다.

강동균/김인식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