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철곤 오리온 회장 "초코파이 팔기 전에 중국을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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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의 꿈 실현해가는 사위회장 스토리
故이양구 회장 뜻 이어
1992년 수교와 동시에 中진출
현금거래 불구 매년 50%이상 성장
故이양구 회장 뜻 이어
1992년 수교와 동시에 中진출
현금거래 불구 매년 50%이상 성장
담철곤 오리온 회장에게는 장인인 고(故) 이양구 동양그룹 창업 회장과의 잊을 수 없는 기억이 하나 있다. 오리온의 전신인 동양제과 익산 공장 설립 직후인 1982년 겨울.동양제과 구매부 과장이었던 그는 이 회장과 함께 공장을 둘러본 뒤 차로 40분을 달려 군산 앞바다에 다다랐다.
한동안 서해를 응시하던 이 회장이 특유의 함경도 사투리로 던진 한 마디."왜 이리(현 익산)에 공장을 짓는지 이유를 알갔어? 저 바다를 좀 보라우.저거이 머지않아 아주 큰 뱃길이 될 거이야.그땐 10억의 엄청난 시장에 가서 죄다 '메이드 인 코리아'로 덮어 버려야지 않갔어." 한 · 중 수교 10년 전의 일화다.
◆준비된 CEO의 리더십
담 회장의 표현대로 '선대 회장의 사업 DNA를 물려받은 덕'일까.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오리온은 중국에 진출한 국내 소비재 기업 중 최고 성공모델이 됐다. 오리온의 중국법인 '하오리여우(好麗友)'는 1997년 현지 생산에 나설 당시 30억여원이던 매출이 지난해 4500억여원으로 12년간 140배나 성장했다. 한 해도 빠짐없이 매년 50% 이상의 경이적인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국내 라이벌 기업 총수조차 "중국에서는 그들(오리온)의 발꿈치라도 쫓아갔으면 좋겠다"며 부러운 속내를 털어놓을 정도다. 중국에서의 선전에 힘입어 오리온은 지난해 국내 식품업체로는 처음으로 해외 매출(6400억원)이 국내 매출(5600억원)을 앞지르는 '글로벌 컴퍼니'로서 위상을 갖췄다.
국내 오너 경영인 중 담 회장만큼 일찌감치 중국 비즈니스 행보를 보인 사람도 드물다. 수교 이전이었던 1991년 '사전답사'차 중국을 처음 찾은 데 이어 1992년 8월 국교가 수립되자마자 베이징 사무소를 냈다. 그렇다고 오리온의 중국 사업이 '속도전'만으로 진행된 건 결코 아니다. 베이징 사무소 개설 이후 1997년 베이징 인근 랑팡공장에서 초코파이를 첫 현지 생산하기까지 시장조사와 시뮬레이션 작업에 들인 시간만도 5년이나 된다.
그의 치밀한 '중국 연구'와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게 현금거래다. 국내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 도전했다가 좌절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부실채권.그 중요성을 깊이 인식한 담 회장은 첫 거래부터 외상을 철저히 배제하고 현금거래만 고집했다. 백운하 오리온 홍보상무는 "사업 초기 외상거래에 대한 숱한 유혹이 있었지만 현금거래를 고수한 결과 초코파이(중국내 제품명 好朋友)는 현재 중국에서 술 · 담배 외에 현금만으로 거래되는 거의 유일한 품목이 됐다"고 설명했다.
◆중국을 사랑할 사람을 뽑아라
오리온 중국 본사 주재원들의 현지 근무기간은 평균 8년으로,중국에 진출한 국내 기업 중 최장 수준이다. 특히 35명의 주재원 중 10년 이상 근무자만 13명에 달한다.
대부분 기업의 주재원들이 3~5년이 지나면 귀국하는 데 반해,오리온 중국 본사에는 주재원 근무기한이라는 것 자체가 아예 없다. 그들에게 중국은 '커리어 관리를 위해 거쳐가는 곳'이 아니라,'뼈를 묻을 평생 일터'인 셈이다.
주재원들 면모를 보면 대만 유학생이나 화교 출신 등 '중국을 사랑할 만한 사람'들이 주류를 이룬다. "제품을 팔기 전에 먼저 그 나라를 사랑하라'는 담 회장의 해외 비즈니스 철학을 인력 채용에도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대만국립대학 출신으로 SK그룹에 근무하다 1999년 오리온 중국 본사에 합류한 김수걸 인사담당 총감(이사 · 44)은 "주재원 임기가 5년인 기업들을 보면 와서 적응하는데 1년,귀국 준비에 1년을 보낸다"며 "내 스스로 이곳에서 뼈를 묻을 생각으로 일하다 보니 현지 인력을 채용할 때도 상당히 장기적인 안목에서 접근하게 된다"고 말했다.
◆중국인의 마음에 '점'을 찍어라
"중국인의 DNA를 파악해 그들을 감동시켜라." 담 회장이 중국 본사 직원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말 중 하나다. '감성 마케팅'을 중시하는 담 회장이 중국인의 DNA를 자극하기 위해 마케팅 화두로 삼은 것은 '인(仁)'.국내 초코파이 광고처럼 한국 소비자들이 '정(情)'에 약하다면 중국인들이 느끼는 최고 가치는 '인(仁)'이라는 판단에서다. 그 첫 번째 광고는 초코파이 상자를 꺼내려다 도자기를 깬 친구를 감싸주려는 초등학생들의 훈훈한 우정을 담은 내용으로,현지에서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오리온 마케팅 임원 시절,초코파이 '정(情)'광고 캠페인을 주도했던 김흥재 중국 본사 사장은 "오리온 중국 법인은 중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이 세운 기업이기에 '차이나 컴퍼니'는 아니다"면서도 "하지만 중국사람처럼 느끼고 호흡하고 그들과 흥망성쇠를 같이하겠다는 의미에서 '차이니즈 컴퍼니'를 지향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자의 영원한 기본은 '맛'
제과사업의 성공을 얘기할 땐 업(業)의 본질,즉 '과자맛'을 빼놓을 수 없다. 중국시장에서 오리온의 품질주의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가 '곰팡이와의 전쟁'이다. 진출 초기 중국 남부지역의 대규모 홍수로 초코파이 일부 제품에 곰팡이가 피는 문제가 발생했다. 오리온은 문제 제품뿐 아니라 당시 시장에 풀린 10만여상자를 모두 수거해 소각했다.
1990년대 국내에서도 리콜에 대한 인식이 미비할 당시,중국에서 전 제품 리콜은 현지 소비자와 '경소상(經小商 · 대리점주)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함께 제품 이미지 제고에 크게 기여했다. 김 사장은 "중국인의 감성을 자극하는 마케팅과 함께 파이류 외에 스낵류의 판매를 강화해 2013년에 중국에서만 1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베이징=윤성민 기자 smyoon@hankyung.com
한동안 서해를 응시하던 이 회장이 특유의 함경도 사투리로 던진 한 마디."왜 이리(현 익산)에 공장을 짓는지 이유를 알갔어? 저 바다를 좀 보라우.저거이 머지않아 아주 큰 뱃길이 될 거이야.그땐 10억의 엄청난 시장에 가서 죄다 '메이드 인 코리아'로 덮어 버려야지 않갔어." 한 · 중 수교 10년 전의 일화다.
◆준비된 CEO의 리더십
담 회장의 표현대로 '선대 회장의 사업 DNA를 물려받은 덕'일까.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오리온은 중국에 진출한 국내 소비재 기업 중 최고 성공모델이 됐다. 오리온의 중국법인 '하오리여우(好麗友)'는 1997년 현지 생산에 나설 당시 30억여원이던 매출이 지난해 4500억여원으로 12년간 140배나 성장했다. 한 해도 빠짐없이 매년 50% 이상의 경이적인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국내 라이벌 기업 총수조차 "중국에서는 그들(오리온)의 발꿈치라도 쫓아갔으면 좋겠다"며 부러운 속내를 털어놓을 정도다. 중국에서의 선전에 힘입어 오리온은 지난해 국내 식품업체로는 처음으로 해외 매출(6400억원)이 국내 매출(5600억원)을 앞지르는 '글로벌 컴퍼니'로서 위상을 갖췄다.
국내 오너 경영인 중 담 회장만큼 일찌감치 중국 비즈니스 행보를 보인 사람도 드물다. 수교 이전이었던 1991년 '사전답사'차 중국을 처음 찾은 데 이어 1992년 8월 국교가 수립되자마자 베이징 사무소를 냈다. 그렇다고 오리온의 중국 사업이 '속도전'만으로 진행된 건 결코 아니다. 베이징 사무소 개설 이후 1997년 베이징 인근 랑팡공장에서 초코파이를 첫 현지 생산하기까지 시장조사와 시뮬레이션 작업에 들인 시간만도 5년이나 된다.
그의 치밀한 '중국 연구'와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게 현금거래다. 국내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 도전했다가 좌절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부실채권.그 중요성을 깊이 인식한 담 회장은 첫 거래부터 외상을 철저히 배제하고 현금거래만 고집했다. 백운하 오리온 홍보상무는 "사업 초기 외상거래에 대한 숱한 유혹이 있었지만 현금거래를 고수한 결과 초코파이(중국내 제품명 好朋友)는 현재 중국에서 술 · 담배 외에 현금만으로 거래되는 거의 유일한 품목이 됐다"고 설명했다.
◆중국을 사랑할 사람을 뽑아라
오리온 중국 본사 주재원들의 현지 근무기간은 평균 8년으로,중국에 진출한 국내 기업 중 최장 수준이다. 특히 35명의 주재원 중 10년 이상 근무자만 13명에 달한다.
대부분 기업의 주재원들이 3~5년이 지나면 귀국하는 데 반해,오리온 중국 본사에는 주재원 근무기한이라는 것 자체가 아예 없다. 그들에게 중국은 '커리어 관리를 위해 거쳐가는 곳'이 아니라,'뼈를 묻을 평생 일터'인 셈이다.
주재원들 면모를 보면 대만 유학생이나 화교 출신 등 '중국을 사랑할 만한 사람'들이 주류를 이룬다. "제품을 팔기 전에 먼저 그 나라를 사랑하라'는 담 회장의 해외 비즈니스 철학을 인력 채용에도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대만국립대학 출신으로 SK그룹에 근무하다 1999년 오리온 중국 본사에 합류한 김수걸 인사담당 총감(이사 · 44)은 "주재원 임기가 5년인 기업들을 보면 와서 적응하는데 1년,귀국 준비에 1년을 보낸다"며 "내 스스로 이곳에서 뼈를 묻을 생각으로 일하다 보니 현지 인력을 채용할 때도 상당히 장기적인 안목에서 접근하게 된다"고 말했다.
◆중국인의 마음에 '점'을 찍어라
"중국인의 DNA를 파악해 그들을 감동시켜라." 담 회장이 중국 본사 직원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말 중 하나다. '감성 마케팅'을 중시하는 담 회장이 중국인의 DNA를 자극하기 위해 마케팅 화두로 삼은 것은 '인(仁)'.국내 초코파이 광고처럼 한국 소비자들이 '정(情)'에 약하다면 중국인들이 느끼는 최고 가치는 '인(仁)'이라는 판단에서다. 그 첫 번째 광고는 초코파이 상자를 꺼내려다 도자기를 깬 친구를 감싸주려는 초등학생들의 훈훈한 우정을 담은 내용으로,현지에서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오리온 마케팅 임원 시절,초코파이 '정(情)'광고 캠페인을 주도했던 김흥재 중국 본사 사장은 "오리온 중국 법인은 중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이 세운 기업이기에 '차이나 컴퍼니'는 아니다"면서도 "하지만 중국사람처럼 느끼고 호흡하고 그들과 흥망성쇠를 같이하겠다는 의미에서 '차이니즈 컴퍼니'를 지향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자의 영원한 기본은 '맛'
제과사업의 성공을 얘기할 땐 업(業)의 본질,즉 '과자맛'을 빼놓을 수 없다. 중국시장에서 오리온의 품질주의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가 '곰팡이와의 전쟁'이다. 진출 초기 중국 남부지역의 대규모 홍수로 초코파이 일부 제품에 곰팡이가 피는 문제가 발생했다. 오리온은 문제 제품뿐 아니라 당시 시장에 풀린 10만여상자를 모두 수거해 소각했다.
1990년대 국내에서도 리콜에 대한 인식이 미비할 당시,중국에서 전 제품 리콜은 현지 소비자와 '경소상(經小商 · 대리점주)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함께 제품 이미지 제고에 크게 기여했다. 김 사장은 "중국인의 감성을 자극하는 마케팅과 함께 파이류 외에 스낵류의 판매를 강화해 2013년에 중국에서만 1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베이징=윤성민 기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