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밥먹고 잠자듯 창조의 생활화…'스폰지 조직'이 강하다
돈과 노동에만 의지하던 회사들이 예기치 않게 혼쭐이 나는 시대다. 지금까지는 기업의 역량이 토지,노동,자본에 좌우되는 것으로 믿어왔다. 하지만 지식경제 시대로 바뀐 뒤에는 상황이 영 달라졌다. 지식 창조 능력이 부족하면 막대한 자금이나 인력도 무의미해진다. 이른바 '창조의 결핍'은 기업을 벼랑으로 내몰기도 한다.

기업 환경의 앞날을 가늠하기 힘든 이러한 시점에 '지식창조 이론 창시자'인 노나카 이쿠지로 교수가 듬직한 대안을 들고 나왔다. 《창조적 루틴》은 일상적으로 지식을 순환시키고 창조해낼 줄 아는 기업만이 깊고도 흔들림 없는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을 1등 기업들의 사례로 증명하는 책이다. 기업이 생존하고 더 나아가 두각을 나타내려면 지식 습관이 기업 전체에 스며들어야 하는데,그러기 위해서는 기업의 루틴,즉 일상을 창조적으로 만들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기업의 창조적 루틴은 개개인의 지식을 모아 섞고 다시 재창조하는 과정에서 정착한다. 변화에 두려움 없이 맞서고 변화마저 변화시키려면 이러한 기업 루틴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이 책의 중심 테마다.

어느 기업이든 최고의 지식을 가진 사람들로 조직을 꾸리지만 정작 그들의 지식을 뛰어난 성과로 연결하는 데는 서툴고 군색하다. 개인들의 지식을 종합해 경쟁력 있는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는 최고경영자(CEO)와 사원이 지식 창고를 공유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노나카 교수가 말하는 창조적 루틴을 부추기는 요소들은 지식비전,무대,지식자산,지식 생태적 환경 등이다.

지식비전을 루틴으로 삼은 대표 기업은 혼다다. 1970년 미국에서 개정된 '맑은 공기 법령'에 준하는 CVCC엔진을 개발할 당시 회장인 혼다 소이치로는 "이것이 미국의 자동차 3사를 이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선언했다. 당시 미국의 자동차 3사는 새 법령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혼다의 기술자들은 소이치로의 동기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유해가스를 줄인다는 자동차 회사로서의 사회적 책임에 부합하는 엔진을 개발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우리의 아이들을 위해 그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소이치로는 자신을 매우 부끄럽게 여긴 나머지 은퇴를 결심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기업이 추구해야 할 흔들림 없는 지식비전이다. 혼다의 지식비전은 'The Power of Dream'이라는 기업 모토처럼 '공익을 위한 꿈의 실현'이라는 절대가치에 있다. 기업이 공익의 지식비전을 간직하는 한 이기적이거나 누군가를 타도하기 위한 전략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이다. 혼다는 오늘날까지도 설립자인 회장마저 뒤흔들 수 없었던 지식비전으로 정상을 지키는 기업이다.

노나카 교수에 따르면 지식은 허공에서 창조될 수 없고,정보 해석이 가능한 장소와 맥락을 필요로 하는데 이러한 장소가 되는 '실제 공간과 가상 공간'이 바로 '무대'다. 45개국에서 회원수 400만명을 확보한 교육기업 구몬의 창조적 루틴은 교사들의 활동 무대에 있다. 구몬 교사들은 지역사회의 수요를 파악해 교재와 서비스를 수정하고 보완한다. 일방적으로 교재를 개발해 회원들에게 주입하는 기존 교육사업 방식과는 차원이 다르다. 교사들의 이 같은 무대 활동은 세계 최대 교육기업 구몬의 지식창조 원천이 되고 있다.

[책마을] 밥먹고 잠자듯 창조의 생활화…'스폰지 조직'이 강하다
이 밖에도 슈퍼마켓 상표로 출발해 글로벌 기업 브랜드로 성장한 '무지',연매출 240조원의 세계 최대 편의점 기업 '세븐일레븐',세계 지퍼의 45%를 생산하는 'YKK',백지 상태에서 프리우스를 탄생시킨 '도요타' 등 10개 기업이 집중 분석돼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영 사상가 20인'을 발표하면서 동양인으로는 유일하게 노나카 교수를 선정한 이유도 이 책을 읽어보면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피터 드러커가 지식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면 노나카 교수는 그 지식을 나선형으로 상승시켜 기업의 흔들림 없는 경쟁력을 키울 일상(루틴)을 만들라고 주문한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소용돌이칠 세계에서 변화에 갈팡질팡하고 적응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새로운 각오로 한 해를 여는 시기에 경영자와 직원이 읽고 실천하기에 좋은 책이다.


김수욱 서울대 경영대학 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