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빠르게 따라가는 것만으로는 현재의 위치를 유지하기도 어렵다. 5년,10년 뒤를 내다보면서 사업 판도를 주도적으로 바꿀 수 있는 기반 기술을 키워나가야 한다. "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계열사 경영진들과 지난 4일 가진 새해 인사모임에서 '테크놀러지 컴퍼니(기술 기업)'라는 새로운 화두를 들고나왔다. 긴 안목에서 첨단 산업을 중심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구축해야 한다는 게 골자였다.

LG그룹이 12일 내놓은 투자계획은 이런 구 회장의 구상을 고스란히 반영했다. 미래 성장사업인 LCD(액정표시장치)용 유리기판,LED(발광다이오드) 칩,2차전지 등을 중심으로 사상 최대규모인 15조원의 투자를 계획한 것.

◆구체화되는 '파주의 꿈'

LG그룹의 투자는 파주에 집중돼 있다. LG디스플레이는 대형 TV용 LCD 패널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파주 8세대 라인을 증설하는 등 올해 총 3조5000억원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다. LG화학과 LG이노텍도 올해부터 파주에 조성한 첨단소재 단지에 LED 칩과 LCD용 유리기판 생산라인을 짓기 시작한다. 그룹 관계자는 "기존 디스플레이 단지와 첨단소재 단지에 전체 시설투자 예산의 절반에 가까운 5조원가량을 투입할 예정"이라며 "올해 말께 미래 생산 거점의 골격이 완성된다"고 설명했다.

주력 계열사인 LG전자는 태양전지 생산라인 증설과 해외 생산라인 확대 등을 준비하고 있다. 예상 투자 규모는 1조5000억원 선이다. 통합 LG텔레콤은 4세대 이동통신,초고속인터넷,인터넷전화,IPTV가 결합한 '컨버전스 사업'을 위한 네트워크 인프라 강화에 투자를 집중할 방침이다. 생명과학은 충북 오송생명과학단지 내에 전문의약품 생산공장을 지을 계획이다.

R&D(연구 · 개발) 예산은 LG전자가 가장 많다. 통신 기능을 강화한 스마트 TV,신 · 재생 에너지 분야 등에 2조1000억원을 쓸 예정이다. LG화학은 전기자동차용 2차전지,LG생명과학은 바이오시밀러(복제약) 개발에 각각 R&D 역량을 집중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연 매출 135조원을 향해

매출 목표도 공격적으로 잡았다. 지난해 125조원보다 8% 늘어난 135조원의 매출을 올리기로 했다. 경영 전략은 프리미엄 제품과 신시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고급스러운 제품을 경쟁자들이 드문 새로운 시장에 판매,경쟁력을 높일 계획이다.

LG전자의 매출목표는 59조원이다. 휴대폰,LCD TV,에어컨 등 기존 주력사업에 B2B(기업간 거래),태양전지 등의 신사업을 더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기로 했다. 디스플레이는 3차원 TV용 패널,전자 종이 등의 신사업으로 덩치를 키울 계획이다. 화학은 올해 말부터 매출이 발생하는 자동차용 2차전지 사업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재계 투자 '기지개'

재계에선 올해 주요 대기업들의 투자가 지난해보다 최소 10% 이상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LG그룹 외에 올해 투자계획을 공개한 기업은 포스코와 하이닉스반도체 등이다. 포스코는 M&A(인수 · 합병)를 포함한 국내외 투자에 최대 10조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작년보다 배 가까이 늘어난 규모다. 하이닉스는 올해 2조3000억원의 시설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지난해(1조원)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삼성그룹도 지난해보다 많은 투자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관계자는 "전자의 메모리 반도체와 LCD 부문에만 최소 8조5000억원의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며 "그룹 전체로 보면 두 자리 수 규모로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SK도 지난해 7조원을 뛰어넘는 투자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그룹 관계자는 "금명간 계열사들의 계획을 취합해 구체적인 액수를 발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