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버전스 시대에는 곳곳에서 뜻하지 않은 경쟁자를 만나게 된다. "(최지성 삼성전자 대표이사)

"격변기에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경쟁자가 나타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 "(남용 LG전자 대표이사)

세계 최대 가전제품 전시회인 'CES 2010'을 찾은 삼성전자와 LG전자 CEO가 공통적으로 던진 화두는 '혼돈'이었다. 이런 구도를 만들어낸 주역은 결합(컨버전스)이었다. 접속(커넥션)과 편리함(컨비니언트)에 대한 디지털 세대의 원초적 열망은 이런 변화를 만들어낸 원동력이 됐다.


태블릿PC,컨버전스 대명사로

혼돈의 시대에 최대 희생양이 되고 있는 데스크톱PC의 운명은 2010년의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불과 20년 전 데스크톱은 디지털 시대를 열어제친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2010년 1월 드넓은 CES 전시장에서 본체,모니터,키보드,마우스의 조합인 전통 PC를 찾는 것은 미로를 찾아가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돼버렸다. 노트북과 휴대폰에 이어 태블릿PC와 TV까지 가세해 '데스크톱 컴퓨터는 역사 속으로 들어가라'며 전통 PC의 등을 떠밀고 있었다.

CES 개막연설에 나선 MS의 스티브 발머 사장이 포문을 열었다. MS 윈도7을 장착한 HP의 새 태블릿PC를 들고 나와 올해의 트렌드가 될 것임을 예고했다. 태블릿은 마우스,본체,모니터,키보드를 하나로 만들어버렸다.

발머는 "사용자들이 흥분할 것"이라고 했고 본인 스스로도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태블릿을 시연했다. 멀티미디어플레이어,PC,e북 리더의 기능을 모두 터치로 사용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데스크톱 컴퓨터 대중화의 장본인인 델도 5인치 태블릿을 공개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도 곧 매킨토시와 아이팟,아이폰,킨들의 기능을 합친 태블릿을 선보이며 새로운 시대를 선언할 예정이다.

태블릿이라는 컨버전스의 대명사는 PC와 노트북의 영역을 침범하고,PMP와 스마트폰 시장의 일부를 공격하고 나아가 기존 e북 시장의 최강자인 킨들을 위협해 결국은 아마존에까지 타격을 가하는 존재로 부상했다.

PC 영역 넘보는 TV

데스크톱의 영토를 더욱 압박해 들어온 또하나의 전자제품은 TV였다.
세계 TV산업을 선도하고 있는 삼성전자는 물론 LG전자,소니,파나소닉,샤프,도시바 등 글로벌 TV업체들이 올해 대표상품으로 내놓은 TV는 예외없이 인터넷 연결기능을 갖추고 있다.

지금까지의 단순한 인터넷 연결과는 달리 VOD시스템을 이용한 영화감상,홈쇼핑,인터넷 서핑 등 PC처럼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연말께 공개될 MS의 모션인식기술 '나탈'이 TV에 접목되면 자신의 신체 사이즈를 입력한 후 TV를 통해 홈쇼핑에 접속해 자신이 옷을 입은 모습을 보면서 쇼핑할 수 있을 정도가 된다.

뿐만 아니다. 삼성전자는 TV에도 앱스토어를 만들었다. 스마트폰처럼 각종 프로그램(애플리케이션)을 자유롭게 다운받아 사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앱스토어에서 게임 애플을 내려받아 대형 TV를 통해 쉽게 게임을 할 수 있다면 값비싼 소프트웨어를 사야 하는 닌텐도와 X박스 등의 게임기 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삼성은 TV속 삼성앱스토어가 3월 중 열릴 것이라고 예고했다.
백우현 LG전자 사장은 "앞으로 집 밖에서는 스마트폰이,집 안에서는 TV가 모든 커넥션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미래의 TV로 불리는 스마트TV에 대해 백 사장은 "상상하는 모든 것을 TV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것"이라며 TV의 진화와 영역파괴는 여전히 진행형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대세로 자리잡은 3D TV

진화한 TV는 극장 영역까지 침범할 기세다. CES 2010의 가장 큰 화두는 누가 뭐래도 '3D'다. 선진기업은 물론 중국업체들까지 모조리 3D TV를 내놨다. 전시장에서 TV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예외없이 "3D 영화인 아바타 보셨어요?"라고 물어 아바타가 또다른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런 3D TV는 앞으로 집안을 극장으로 바꿔가는 촉매제가 될 게 분명하다.

이를 재촉하듯 TV업체들은 블루레이 플레이어와 고성능 오디오시스템을 TV에 묶어파는 전략을 세워놓고있다. 50~60인치대까지 상용화된 3D LED TV만 해도 극장의 영역을 침범하기 충분하다면 과언일까.

기업들은 이렇듯 예측불가능한 경쟁의 시대 한복판에 서 있다. 이런 시대에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아무도 모른다는 게 정답일 것이다. 하지만 생태운동가인 황대권씨의 글귀는 혼돈의 시대에 희미하지만 헤쳐나가야 할 길을 보여주는 듯 하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이기에 숱한 실패와 시행착오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다. 창조의 새로운 힘이 거기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



라스베이거스=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