맡긴 돈을 마음대로 썼더라도 일시 사용 허락이 있었다면 횡령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3부(주심 안대희 대법관)는 대신 채무를 갚아달라고 맡긴 돈을 임의로 사용한 혐의(횡령)로 기소된 송모(57)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 합의부로 돌려보냈다고 31일 밝혔다.

재판부는 "위탁자가 돈을 송금하면서 수탁자에게 일시적으로 사용해도 좋다는 허락을 했다면 그 처분권이 수탁자에게 이전되기 때문에 횡령죄에서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횡령죄에 있어 보관자의 지위에 있었는지, 불법영득의 고의가 있었는지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이 해소되지 않았음에도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 판단에는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지적했다.

형법상 횡령죄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재물을 횡령하거나 그 반환을 거부한 때'로 규정돼 있다.

송씨는 2004년 6월 빚과 이자를 대신 갚아달라는 부탁과 함께 심모씨에게서 4억4천만원을 송금받아 그 중 1억3천만원만 송씨 빚을 갚는 데 쓰고 나머지는 자신의 체납세금 납부와 개인채무 변제 등에 사용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송씨가 심씨에게 일시 사용 허락을 받고 사용했다는 의심이 든다며 무죄를 선고했으나, 2심은 일시 사용을 승낙했어도 채무변제라는 위탁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편의를 봐준 것에 불과하다며 유죄로 판단해 징역 10월을 선고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abullapi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