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매니저(fundmanager)….

그들의 몸 값은 억대 연봉을 자랑한다. 명문대 출신인 이들은 외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면서 고객에게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투자결정을 내린다. 화이트칼라의 정점인 모습이다.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초과수익'을 얻기 위해서는 외롭고 고독한 선택을 반복해야 한다. 이 선택에 대한 객관적인 근거도 만들어내야 하고, 결과가 신통치 않을 때에 돌아오는 책임도 자신의 몫이다.

펀드매니저는 적게는 수십억원에서 많게는 수 조원을 굴린다. 때문에 일반인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큰 돈을 굴리기도 하고 그 큰 돈에는 내 돈이 일부 들어있다는 생각을 가진다. 일반 직장인들에게 수조원의 돈을 주무르고 투자를 결정하는 모습은 자본주의 시장에서 '왕'이나 다름없다.

한국경제신문 온라인미디어 <한경닷컴>은 지난 10월 구재상 미래에셋자산운용 사장을 시작으로 김광진 동부자산운용 투자전략본부장까지 다양한 펀드매니저들을 심층 인터뷰했다. 준비기간까지 합치면 총 6개월여간의 대장정이었다. 총 24명의 펀드매니저들을 인터뷰했고 참여한 기자만도 10명이었다.

대형주를 주무르는 주식형 펀드매니저(장인환 KTB자산운용 사장)부터 0.1%의 금리에도 목숨거는 채권형펀드매니저(김기현 우리자산운용 채권운용본부 부본부장) 그리고 1983년생인 입사 2년차인 펀드매니저(김보람 ING자산운용 운용역, 안세윤 한국투자신탁운용 운용역)에서 그들의 아버지뻘인 최고령 펀드매니저(이상진 신영투신운용 부사장,1955년생), 그리고 펀드매니저의 전설로 불리는 앤서니볼턴 피델리티 포트폴리오 매니저까지 담아냈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는 말이 있다. 눈 앞에 물건을 보면 그것을 가지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는 뜻이다. 펀드매니저들의 눈 앞에는 뭉칫돈들이 있다. 그러나 직접 만나본 그들은 내면적인 '욕심'을 넘어 시장 안에서의 '탐욕'과 '공포'와 싸우며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그런 이유로 펀드매니저를 얼룩말에 비유하는지도 모르겠다. 소형주 투자의 개척자로 불리는 랄프 웬저(Ralph Wanger)의 책 '작지만 강한 기업에 투자하라(원제 : A Zebra in Lion Country)'에 보면 사자나라의 얼룩말 비유가 나온다.

펀드매니저와 얼룩말은 똑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는 얘기다. 얼룩말이 무리의 바깥쪽에 자리 잡는 경우에는 신선한 풀(소외주)을 배불리 먹을 수 있지만 사자가 달려들 경우에는 먹잇감이 될 위험이 있다. 반대로 무리의 중간쯤에 있는 얼룩말은 제대로 된 풀(대형인기주)을 먹을 수 없지만 사자의 위협으로부터는 안전하다.

펀드매니저가 대중들에게 인기 높은 주식만 사들이면 투자자들에게 질책받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내릴 일만 남은 대형우량주에 베팅하는 것보다는 오를만한 소외주를 찾는 게 훨씬 합리적이고 이것이 펀드매니저들이 해야 할 일이다.

국내에 등록된 펀드매니저만도 1000명을 돌파했다. 펀드시장의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들만의 리그는 더욱 치열해졌다. 전쟁터와도 같은 주식시장에서 펀드매니저들의 과거의 모습들은 어땠을까?
[펀드매니저의 투자비밀&#9331;·끝]탐욕·공포와 싸우는 억대연봉자
◆펀드역사 40년…이제는 대중화·보편화 시대

바야흐로 펀드 보편화 시대다.

2006년부터 펀드시장이 급증하면서, 국내 가구수는 1691만7000개(통계청 12월 기준)이고, 펀드의 계좌수는 2067만 계좌에 달한다.

'1가구 1펀드' 시대를 넘어 '1인 1펀드' 시대로 발전하고 있다. 이제는 '펀드란 무엇인가' 보다는 '어떤 펀드를 가입해야 수익을 얻는가'를 궁금해하는 시대가 됐다.

최근에서야 다들 아는 펀드지만, 역사는 40년이 다 되어간다. 국내 최초의 펀드는 1970년 5월20일 탄생했다. 당시 한국투자공사(현재 하나UBS자산운용)가 설정한 '안정성장1월호 증권투자신탁'이 그것이다. 한국기네스에도 등록되어 있는 이 펀드는 현재도 가입이 가능하다.

이후 1980년대 증시의 대세 상승기에는 3투신(한국투자신탁, 대한투자신탁, 국민투자신탁)을 중심으로 주식운용역들이 활약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후에 펀드매니저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종합주가지수는 1985년말 164.4에서 1986년말에는 276.6로 상승했고, 1987년말에는 525.1을 기록했다. 1988년말에는 907.2에 달하는 등 연평균 77% 상승했다.

[펀드매니저의 투자비밀&#9331;·끝]탐욕·공포와 싸우는 억대연봉자
이같은 상승세와 함께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에는 각 투신사별로 별명과 함께 매니저들을 내세우기도 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피스톨박'이라고 불리던 박길종 당시 국민투신 이사였다. 이에 질세라 나머지 투신사들도 대항마(對抗馬)를 내보냈다. 한투의 '라이플장' 장영상씨와 대투의 '서터린치' 서임규씨 등이 그들이다.

3명의 펀드매니저들은 한 시대를 풍미하는 동시에, 일부 종목에 집중해 투자하면서 시장을 주도했다. 이들이 쏘는 종목은 무조건 올랐다는 의미에서 총기류의 별명도 붙게 됐다. 권총이라는 의미의 '피스톨(pistol)'이나, 소총이라는 의미의 '라이플(rifle)' 모두 당시의 투자스타일을 대변해주는 이름들이다.

1992년1월, 우리 주식시장은 외국인에게 개방됐다. 1993년 1월에는 증권, 투신, 보험,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들의 해외투자한도가 확대됐다. 주식시장이 안팎으로 개방의 물결을 타면서 펀드매니저들도 현금을 '쏘던' 것에서 벗어나 '분석'이 필요한 시대가 됐다.

당시에는 펀드매니저가 되려면 회사에서 자체적으로 선발과정을 통해 운용인력을 배치했다. <한경닷컴>과 인터뷰를 했던 주요 운용사들의 임원급 펀드매니저들도 이 같은 과정을 거쳤다. 구재상 미래에셋자산운용 사장, 장인환 KTB자산운용 사장, 강신우 한국투자신탁운용 부사장,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부사장 등이 대표적이다.

◆두 번의 펀드열풍 後…펀드매니저 1000명 돌파

1995년 12월 증권투자신탁제도를 개정하면서 펀드매니저 등록시대가 열렸다. 그리고 1998년 12월부터는 '운용전문인력 시험'이라는 제도가 생겼다. 이 시험에 붙어야 펀드매니저가 될 수 있는 이른바 '자격증' 시험이 생긴 것이다.

이런 기준을 통과해 2009년 12월 현재 등록된 국내 펀드매니저의 숫자는 1087명에 달한다(금융투자협회 기준). 삼성투신운용,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한국투신운용 등은 50명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 KB자산운용, 우리자산운용 등도 40명 안팎의 펀드매니저들을 거느리고 있다.

'펀드매니저 1000명 시대'를 열기에 앞서 2007년 7월 '1가구 1펀드' 시대가 열렸다. 이 같이 펀드시장이 성장하게 된데에는 두 가지 큰 계기가 있었다. 바로 '바이코리아펀드 열풍'과 '적립식펀드 판매 대중화'다.

바이코리아펀드는 현대투자신탁이 운용하고 현대증권이 판매한 펀드다. 외환위기 이후 1999년 3월 '한국경제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며 내놓은 주식형 수익증권은 대성공을 거뒀다. '바이코리아펀드'는 두 달여만에 판매액이 5조원을 넘었고 주가도 급등해 '펀드의 힘'을 보여준 계기가 됐다.

동시에 덩치가 커져버린 바이코리아펀드는 주식시장에서 '거포' 역할을 했다. 당시 이 펀드를 운용했던 장인환 KTB자산운용 사장, 강신우 한국투자신탁운용 부사장 등의 명성도 이 시기에 쌓였다.

바이코리아의 열풍이 한창일 무렵, 한편에서는 '뮤추얼펀드' 바람이 불고 있었다. 1997년 7월 국내 최초의 자산운용사인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설립됐다. 미래에셋은 국내 최초의 뮤추얼 펀드(박현주 1호)를 내놓으면서 간접투자라는 문화를 알리기 시작했다.

미래에셋은 2001년 국내 최초의 개방형 뮤추얼 펀드인 ‘인디펜던스 펀드’와 환매수수료가 없는 선취형 뮤추얼 펀드인 ‘디스커버리 펀드’를 시장에 잇달아 내놓으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은행을 통한 펀드판매가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다. 여기에 2003년 랜드마크투신(현 ING자산운용)의 '1억만들기 펀드'와 미래에셋의 '3억만들기 펀드' 등이 출시되면서 은행은 펀드판매창구 역할을 톡톡히 했다. 투자자들은 은행에서 저금리의 '적금' 보다는 매달 돈을 부으면서 고수익을 챙길수 있는 '적립식펀드'를 선호하기 시작했다.

당시의 투자환경은 저금리와 맞물려 유동성이 풍부했다. 코스피지수는 겨우 500선에 머물러 있어 주식 투자의 매력이 부각됐던 시기였다. 적립식펀드의 열풍으로 펀드의 덩치는 커져갔고, 자산운용사와 투자자문자들도 잇따라 생겨나기 시작했다. 소수의 직업이었던 펀드매니저가 인기를 끌기 시작하고 '일등신랑감'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황성택 트러스톤자산운용 사장,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 박건영 브레인투자자문 사장, 김태우 피델리티자산운용 한국주식투자부문 대표, 송성엽 KB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장 등이 업계 안팎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2007년 6월 정부가 환율 방어를 목적으로 해외펀드에 비과세 조치를 취하면서 '적립식펀드 열풍'은 '해외펀드 열풍'으로 번졌다. 2009년말까지의 한시적인 조치였지만 중국, 인도, 베트남, 브라질 등 이머징 국가에 투자하는 펀드들에 자금들은 몰려들었다.

자산운용사들이 외국계와 손을 잡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다. 새로 설립되는 자산운용사들도 외국 금융사들과 합작법인을 냈다. 연락사무소 정도만을 뒀던 외국계 자산운용사들도 2000년 중반부터 국내에서 자산운용업 허가를 취득하고 펀드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다양한 펀드, 버라이어티한 펀드매니저들

다양한 자산운용사들의 출현으로 주식형은 물론이고, 실물, 부동산, 채권 등 다양한 해외펀드를 소개되기 시작했다. 외국인 펀드매니저들도 국내에 직접 상품을 들고 나와 설명했다.

'봉쥬르 차이나펀드' 시리즈를 소개한 끌로드 티라마니 BNP파리바 매니저, '슈로더 브릭스 펀드'를 내놓은 앨런 콘웨이 슈로더투신운용 매니저 등이 대표적이다. 피터린치의 '마젤란펀드'로 유명한 피델리티인터내셔널도 한국에 이 시기에 둥지를 틀었다.

자산운용사와 펀드개수는 늘었지만 펀드매니저는 품귀상태였다. 최인호 하나UBS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장이나, 김기현 우리자산운용 채권운용 부장 모두 증권사에서 자산운용사로 스카우트된 경우다.

탐방과 리서치 등 전통적인 펀드매니저들도 강세지만, 시스템이나 퀀트분석을 이용한 펀드들이 다양하게 선보이면서 펀드매니저들의 출신도 이공계로 넓혀졌다. 인덱스펀드로 특화된 유리자산운용에서 한진규 상무는 카이스트 출신으로 자리잡고 있다. 총 19명의 펀드매니저 중 4명이 카이스트 출신일 정도로 이공계는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일반 자산운용사에서도 상장지수펀드(ETF)나 인덱스펀드를 운용하는 팀은 이공계가 영락없이 포진해 있다. 우리자산운용 퀀트운용본부에는 박상우 본부장(서울대 통계학과), 윤주영 부장(카이스트) 등이 이공계 출신이고 삼성투신운용의 인덱스운용팀에는 이천주 매니저(포항공대), 이정환 팀장(한국과학기술원)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밸류자산운용은 최근 뽑은 신입사원 4명 전원이 서울대 공대를 졸업했거나 졸업할 예정이다.

펀드공화국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국내 펀드시장은 큰 성장세를 보였다. 다양한 펀드와 펀드매니저들로 시장은 화려한 면면을 갖추게 됐다.

국내 공모펀드 수만도 3686개에 달한다. 그러나 이 중 설정원본이 100억원 미만인 펀드가 2422개로 65.7%를 차지하고 있다. 전체규모는 늘었지만 이름만 있는 자투리펀드도 과도하게 양산됐다.

펀드공화국의 어두운 이면인 셈이다. 커진 '덩치값'을 하지 못하고 실속은 적어졌다. 이런 가운데 '대량환매'나 '세제혜택 종료' 등의 요인들은 시장을 무너뜨리는 요인으로 다가왔다.

지난해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펀드의 불완전판매와 펀드매니저의 윤리 문제도 불거졌다.

'불완전판매' 문제로 법정에서 시비를 가리고 있는 펀드들이 즐비한 상태다. 1심 정도만 마친 상태여서 투자자들과 운용사·판매사 간의 법정공방은 내년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는 버나드 메이도프 전 나스닥 증권거래소 위원장은 다단계 금융사기 수법인 '폰지 사기'로 투자자들을 울렸다. 프랑스 소시에테제네랄(SG) 소속 중개인 제롬 케르비엘은 금융사고를 터뜨렸다.

<한경닷컴>이 만나본 펀드매니저들은 이 같은 문제들을 공감하고 있었다. 또한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펀드매니저 뿐만 아니라 투자자들도 성숙한 의식을 가져야 한다는데 입을 모았다.

한 펀드매니저는 "1억원이 펀드매니저들에게는 운용하는 자금 규모에서 몇 %도 안될 수도 있지만, 투자자들에게는 100%의 자산일 수도 있다"며 윤리의식을 강조했다. 투자자들의 자산을 소중히 생각하고 일을 즐거운 스트레스로 여긴다면 펀드매니저만큼 매력있는 직업도 없다는 것이 그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한경닷컴 김하나 기자 ha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