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제국주의에서 비롯된 '유물 전쟁'이 가열되고 있다. 문화재를 대거 약탈당한 이집트 주도로 내년 3월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이 참여한 가운데 해외 반출 유물의 환수 방안을 논의하는 회의가 열릴 예정이다. 중국은 약탈 문화재를 되찾기 위한 보물사냥팀까지 구성,해외에 파견하기 시작했다. 금융위기 이후 개발도상국의 위상이 커지고 있어 유럽 선진국들의 버티기가 계속될지 주목된다.
승전보 올린 이집트

이집트는 최근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으로부터 파라오 시대의 유물 반환에 대해 긍정적인 약속을 받아냈다. 이집트가 유물이 반환될 때까지 루브르 박물관과 모든 협력 관계를 중단하겠다고 강경 자세를 취한 데 따른 것이다. 23일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이집트가 반환을 요구한 유물은 룩소르 인근 '왕가의 계곡' 근처 고대 무덤에서 출토된 벽화 부조 4점이다. 루브르 박물관은 카이로 남부에서 진행하고 있는 파라오의 무덤 발굴 작업에 타격을 입지 않기 위해 한발 물러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집트는 여세를 몰아 독일에도 베를린 신박물관이 소장 중인 네페르티티 왕비 흉상에 대한 반환을 재차 요구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오는 29일 국가위원회를 소집하기로 했다. 1930년대부터 반환을 요구했지만 독일 정부는 흉상을 합법적으로 인도받았다며 거부해왔다. 네페르티티 왕비는 기원전 14세기 태양신을 숭배하는 일신교 신앙을 도입한 아크나톤 왕의 배우자로,흉상은 1912년 이집트에서 발견돼 이듬해 독일로 반출됐다. 이집트는 영국과는 대영박물관에 있는 로제타 스톤 반환을 놓고 분쟁 중이다.

이집트는 다른 나라와 연합전선으로 옛 제국주의 열강을 압박,5000여점의 문화재를 반환받는다는 전략도 세웠다. 자히 하와스 고유물최고위원장은 "내년 3월 말 회의를 열어 도난 유물을 되찾기 위해 어떻게 할지 토론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보물사냥팀 가동

뉴욕타임스(NYT)는 미국 박물관에 전시된 문화재를 살피는 중국 조사단을 소개하면서 이들로 인해 미국 · 유럽 박물관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조사단은 지난 2주간 뉴욕 메트로폴리탄을 비롯한 미국 내 박물관을 순례하며 과거 약탈된 해외 중국 문화재의 실태를 조사했다. NYT는 "문화예술 전문가들로 구성된 이른바 '보물사냥팀'이 박물관 측에 유물들의 습득 출처와 유물 소유가 합법적인지를 증명하는 문서를 요구했다"고 전했다. 조사단은 내년엔 문화재 조사 활동을 영국 · 프랑스 등 유럽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NYT는 "서방 박물관들이 국가 위상이 높아진 중국이 자국 문화재 반환을 막무가내로 요구할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중국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순수 조사 차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의 국보급 문화재인 청나라 황실정원 위안밍위안(圓明園, 베이징 소재)관리처 천밍제 주임은 "유물 소유자들의 기부로 유물이 중국으로 되돌아오는 것이 최상의 시나리오"라며 "이번 조사는 해외에 있는 중국 문화재에 대한 데이터베이스 구축 차원"이라고 해명했다. 중국이 해외 조사팀까지 가동하고 나선 것은 자국 내 문화재 반환 여론이 커진 데 따른 것이다. 중국에선 지난 2월 위안밍위안 12지신상 가운데 토끼와 쥐 머리상이 파리 크리스티 경매장에 나옴에 따라 자국 문화재를 되찾자는 여론이 높아졌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물 분쟁에선 약탈해간 나라가 버티면 해법이 없는 게 현실이다. 유네스코의 약탈 문화재 반환규정은 1970년 이후 거래된 약탈 문화재에만 적용돼 한계가 있다. 이와 관련,미 플로리다법원은 이날 미국의 보물사냥회사인 오디세이 마린익스플로레이션이 1804년 스페인 인근 대서양에서 가라앉은 스페인 함대를 2007년 발굴해 획득한 은화 등 유물을 스페인에 돌려주도록 판결했다.

오광진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