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가 지난 4~10월 방송한 '솔약국집 아들들'은 올해 드라마 중 최종회 시청률(48.7%)과 순간 시청률(53.7%)에서 최고를 기록했다. 평범한 가정의 네 아들이 사랑과 결혼을 통해 성장하는 이야기를 따스하고 유머러스하게 펼쳐낸 드라마였다. 막장 드라마가 판치는 방송가에서 착한 드라마로는 드물게 성공했다.

조정선 작가(39)는 "소소한 이야기로 관심을 끌기가 쉽지 않지만 시청자들이 자신과 닮았다고 느끼는 순간 친근하게 받아들인다"며 성공 비결을 설명했다. 여의도 집무실에서 조 작가를 만났다.

"'솔약국집~'은 종영 두 달이 지난 요즘에도 반향이 지속되고 있어요. '시즌 2'를 방송하라고 성화거든요. 사실 방송사 관계자들이 처음에는 손사래를 쳤던 작품이 '대박'을 친 것이라 저로서는 즐거운 경험이죠.원고를 처음 쓸 때부터 사건보다는 정서를 전달하려 했던 작품이에요.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라도 시청자들이 자신과 닮았다고 느끼면 친근하게 받아들이는 법이지요. "

조 작가는 평범한 이야기가 진부해지지 않도록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등장 인물들의 소소한 걱정거리는 희극적으로 그려냈다. 의사 아들이 '왜 우리 엄마는 형만 좋아할까?' 하는 식이다. '내 자식이 최고'라는 엄마는 이웃과 반목하는 캐릭터다. 시대의 덫일 수 있는 '가족 이기주의'를 화두로 던진 셈이다.

"'착한 드라마'라고만 말할 수 없어요. 삼각관계에다 불륜과 시한부 인생,출생의 비밀 등이 여느 드라마처럼 모두 등장했으니까요. 하지만 다루는 방식이 달랐죠.가령 불륜을 그리되,모텔에서 나오다 들키는 식이 아니라 남의 아내가 된 첫사랑 여인에게 자전거를 태워주는 식이었죠.그러면 불륜도 순수한 사랑이 되는 거예요. 한 여자를 차지하기 위해 두 형제가 싸움하는 모습도 단순한 사랑싸움으로 그리지 않았어요. '카인과 아벨'처럼 장남과 차남의 이야기였지요. 갖고 싶은 것을 형제에게 빼앗겼을 때 발생하는 갈등과 화해를 담아낸 것이지요. "

조 작가는 전작 '며느리 전성시대'처럼 여기서도 자식과 부모뿐 아니라 할머니와 할아버지까지 3대를 등장시켰다.

"2대와 3대는 삶의 프리즘이 달라요. 2대라면 부모와 자식 간 갈등과 화해만 다루면 되겠지요. 3대 이야기에서는 며느리와 시아버지가 원수처럼 살아오면서 쌓은 구원(舊怨)을 담을 수 있어요. 인간관계나 감정의 깊이가 다르지요. 특히 3대는 우리가 돌아가고 싶어하는 원형이기도 합니다. "

사람들은 드라마를 통해 현실을 보고 싶은 게 아니라 향수를 달랠 수 있는 원형을 찾고 싶어한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지금은 사라졌지만 과거에 존재했던 현실을 찾아내려 한다고.

"그것을 저는 '선택적 리얼리즘'이라고 불러요. 이 때문에 제 이야기는 구닥다리란 비판도 받아요. 의사 아들이 노인과 함께 살며 마당에서 세수하는 집이 요즘 어딨냐고 반문하지요. "

드라마 속 네 형제는 겉으로는 멀쩡해도 속으로는 허점투성이다. 작가의 말을 빌리면 '평균 이하의 매력을 가진 캐릭터들'이 인기에 한몫한 셈이다. "시청자들은 자신보다 덜 영악하게 대처하는 캐릭터를 보면서 편안함을 느낍니다. 2% 부족한 주인공들은 갈림길에서 순수를 선택합니다. 사람들은 결국 천진하고 순수한 인간을 좋아하게 마련입니다. "

이런 등장 인물과 착한 이야기는 방송작가들은 소설가와 달리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갖춰야 한다는 소신에서 비롯됐다.

"전파는 공공재라고들 합니다. 저 같은 방송작가는 그것을 매주 120분 동안이나 씁니다. 그러니 정신상태가 맑아야 합니다. 예민한 감수성과 따뜻한 통찰력도 필요하고요. 100여 명의 배우와 스태프들이 기다리니 원고도 제 날짜에 맞춰내야 하고요. 감정적으로나 체력적으로 내공을 요구하는 셈이죠."

이 때문에 조 작가는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고 한다. '내 가정을 잘 지킨다''건강을 해치는 일을 안 한다''국민에게 해가 되는 드라마는 안 쓴다'고.그는 자신과 타인의 행복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작가생활을 마치고 싶다고 피력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