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2000년경 만들어져 기원전 14세기 바빌로니아의 사제 신-레케-우닌니가 편집했다는 인류 최고(最古)의 서사시인 『길가메시 서사시』에는 인류 최초의 문명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고 한다. 이 고대 설형문자로 쓰여진 수메르 문학작품은 최초의 도시문명의 모습과 함께 다양한 사회상을 살필 수 있는 힌트들을 남기고 있다.
특히 인류사 초기부터 존재했던 직업의 종류를 찾을 수 있는데,우선 지배자인 왕(정치인)과 제사 관련 업무를 보던 사람들(종교인),막강한 군사력으로 백성들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했던 군인에 대한 언급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인과 종교인, 군인 보다 더 눈길을 끄는 초창기 직업으로는 사냥꾼, 그리고 ‘거리의 여인(신전을 일터로 하고 있으니 범 종교인이라고 할 수도 있긴 하다.)’을 꼽을 수 있을 듯 하다.
무엇보다 사냥꾼은 비문명화된 자연인과 문명의 경계를 오가는 첨병으로, 창녀는 야성을 지닌 자연인들을 순화하고, 거세해 문명화로 편입하는 상징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인류가 남긴 최고령 작품속에 각인돼 있다. 모두 단순히 먹고살기 위한 직업이 아닌, 문명화의 승리의 첨병역할을 하는 큰 역할을 지닌 직업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길가메시 서사시』의 주인공 길가메시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생긴 인류 최초의 도시 우룩의 지배자로 반신반인(半神半人)으로 묘사된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3분의2가 신이고,3분의 1이 인간인 존재였다. 키가 3m에 이르고 엄청남 힘을 지닌 길가메시는 하늘아래 당할자가 없었기에 모든것이 제 맘대로였고, 막무가내였다. 길가메시는 한마디로“방자함이 밤낮으로 끝이 없고, 군인의 딸이건 대신의 아내이건 가리지 않고 빼앗아 자기의 색욕을 만족시켰다”라고 표현된다.
이에 신들은 백성들의 탄원을 받아들여 길가메시에 대항할만한 반인반수(半人半獸) 라이벌 엔키두를 만들어 내게 된다. 이 자연인 엔키두는 “영양떼와 같이 언덕에서 풀을 뜯어먹고 짐승들과 함께 물 웅덩이 속에 숨어 지냈다”라고 설명된다. 그는 짐승들과 즐겨 물장난을 하는 자연과 동화된 존재였다.
하지만 이런 엔키두를 본 사냥꾼들은 혼비백산 할 수 밖에 없어 버렸다.엔키두는 동물을 잡으려 파놓은 모든 구덩이들을 메워버리고 덫도 부숴 동물들을 풀어주었기 때문이다.자연에 대한 문명의 잠식을 막고,모든 것을 자연상태로 되돌려 버린 것이 엔키두였던 것이다.
공포에 질린 사냥꾼들은 그의 적수가 되지 못하고 도망가기에 바빴다.동물들과 함께 언덕을 돌아다니며 풀을 뜯어먹는 엔키두에 대해 사냥꾼들은 “그의 힘을 당해낼 자가 없을 것이다.하늘에서 내려온 신인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했다.
결국 이같은 상황을 타개하고 나선것은 공포에 질린 사냥꾼의 아버지였다.사냥꾼의 아버지는 사냥꾼에게,“아들아 우룩에 가면 길가메시라는 자가 있다.아직까지 그를 누른 자가 없지.그는 하늘의 별처럼 강하단다.길가메시를 만나 그 야만인에 대해 얘기해주려무나”라고 ‘문명의 본국’에 응원군을 요청하게 된다.
이와 함께 자연인 엔키두의 괴력을 없애는(자연상태에서 길들이기 시작하는,자연의 힘을 거세하는)방법도 제시하게 된다.바로 그것은 엔키두에게 창녀를 만나게 하는 것이었다.“그리고 그(길가메시)에게 사랑의 신전에서 일하는 창녀 한명만 보내 달라고 부탁하여라.그녀를 데려다가 여자의 힘으로 그를 꺽어보자.그녀를 발가벗겨 세워두면 그가 그녀를 보는 순간 끌어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동물들은 그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라고.
결국 사냥꾼은 우룩을 향해 길을 떠났고 길가메시를 만나 자초지종을 고하자 길가메시는 “사냥꾼이여,쾌락의 아이 창녀를 데리고 돌아가라. 그녀가 우물가에서 옷을 벗고 있으면 그자가 그녀를 본순간 그녀를 끌어안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동물들이 그를 꺼려할 것이다”라고 응답하게 된다.
이어 다시 사냥의 최전선으로 돌아온 사냥꾼은 같이온 창녀에게 속삭인다. “저기 그가 내려오고 있다. 여인이여 지금이 때다. 가슴을 내놓고 부끄러워하지 마라. 주저하지 말고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라. 그대의 알몸을 그에게 보여 그로 하여금 너를 소유하게 하라. 그가 가까이 오면 스스로 옷을 벗고 그와 함께 누워라. 그로 하여금 그대에게 사랑을 고배하게 만들어 숲의 동물들이 그를 꺼리도록 하라”
이어 『길가메시 서사시』가 전하는 에로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그녀는 아무 부끄러움 없이 그를 맞아들였다. 그의 타는듯한 열정을 받아들였다. 그녀 위에서 머뭇거리는 그에게 그녀는 여인의 기술을 가르쳐 주었다. 여섯 낮과 일곱밤을 그들은 함께 누워있었다.”
창녀를 만난동안 엔키두는 숲속을 잊고 있었지만 곧 싫증을 느껴 자연으로 돌아갔지만 이제 동물들은 그를 보자마자 뛰어 도망갔다. “그도 같이 뛰려 했으나 몸이 마치 끈으로 묶인것 같았고, 뛰려는 순간 무릎을 삐고 말았다. 그의 날램도 사라져버렸다”고 서사시는 표현한다.
결국 엔키두는 창녀가 이끄는 길을 따라 우륵으로 가서 “내가 제일 강하다.나는 옛질서를 바꾸려 이곳에 왔노라”라고 외치며 길가메시에 도전장을 내밀게 된다. 길가메시와 엔키두는 황소처럼 콧김을 내뿜으며 서로 엉켰고,문들이 박살나고 벽들이 흔들렸다. 길가메시가 땅속에 다리를 박은채 무릎을 꿇었고, 이어 엔기두도 쓰러졌다. 그 순간 난폭한 성질이 사라졌다. 둘은 서로 끌어안았고 우정이 싹트기 시작했다.(이 장면은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풍월주를 뽑는 비제에서 유신랑과 알천랑의 대결 묘사와 놀랄만큼 유사하다.) 이어 두 사람(몬스터)은 백향나무 숲을 지키는 산지기 신 후와와를 살해하고, 우룩의 여신이며 전쟁과 사랑의 여신인 이시타르를 모욕 주며 하늘의 황소를 살해하는 모험을 이어가게 된다.
결국 자연인 엔키두의 이같은 문명화 과정은 ‘문명의 상징’ 창녀를 통해 이뤄지게 되고, 문명화와 함께 순수의 상실과 타락이라는 수천년된 오래된 스토리의 원형을 만들어내게 된다. 자연인과 문명인의 투쟁이라는 도식적 분석은 결국 문명인의 승리와 도시화라는 결과로 이어지면서...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가 끝없는 ‘우즈의 연인’을 창출해 내면서 염문설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국내에선 유명 스타가수의 ‘10대 성매수 의혹’이 불거지는 일이 발생했다. 이같은 섹스 스캔들을 잇따라 접하면서 문득 인류 최초의 기록문헌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직업중에 매춘업이 있다는 점이 떠올랐다. 자연인 엔키두가 위대한 자연의 힘을 상실한게 창녀탓이라면 오늘날 각자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인물들이 급속히 추락하는 이유도 성과 관련한 추문이라는 점은 적잖은 공통점이 있는 듯 하다. 4000년전 성매매는 문명의 상징으로 묘사됐다. 비록 4000년전과 변하지 않은 인간 공통의 모습도 있겠지만 문명의 상징마저 창녀에서 변하지 않은 것은 아닐 터이다. 오늘날 문명의 상징으론 무엇이 있을까. 또 오늘날의 상징은 고대의 창녀보다 얼마나 더 인간적이고 떳떳한 상징일까.
<참고한 책>
N.K,샌다즈,길가메시 서사시,이현주 옮김,범우사 1992
주경철, 문화로 읽는 세계사, 사계절 2005
배철현,‘‘자신’과의 모험을 즐겨라!…불멸 찾아 떠난 길가메쉬처럼…’,한국경제신문 2008년 12월 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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