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 뒷부분의 반짝이는 'M' 배지를 보는 순간 걱정과 설렘이 동시에 밀려왔다. 이 배지는 BMW의 자회사 'BMW M'의 튜닝을 통해 동력성능을 극대화 한 차량에 주어지는 이름이다. 즉 고성능 차량임을 나타내는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BMW가 이 배지를 일반적인 세단이나 스포츠카가 아닌,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 붙인 것은 지난 3일 한국에 출시된 ‘X5 M'과 ’X6 M'이 처음이다. SUV에서도 스포츠카 같은 성능을 발휘토록 하겠다는 BMW의 개발 계획은 최대출력 555마력이라는 경이적인 수치의 '괴물 SUV'를 탄생시켰다.

자동차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이 ‘M'을 가리켜 우스갯소리로 '괴물(Monster)'의 약자로 풀이하기도 한다. 그만큼 '무시무시한' 힘을 자랑하는 SUV 'X5 M'을 타고 총 길이 21.4km의 세계 5대 해상 사장교인 인천대교를 왕복 주행해봤다.

외관은 기존에 출시된 'X5'와 크게 다르지 않다. 먼저 전면에 있는 대형 공기 흡입구가 눈에 들어온다. 공기저항계수를 줄이기 위한 '에어로 파츠'가 차량 아랫부분을 둘러싸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하지만 차체의 '심장부'는 완전히 딴판이다. X5M의 엔진룸을 가득 채운 4395cc의 8기통 트윈파워 터보엔진은 엄청난 덩치로 존재감을 과시한다. X5 일반형은 2993cc짜리 6기통 디젤엔진이 달려있다.

차량에 탑승해 내부를 둘러봤다. SUV 답게 널찍한 공간이다. 완성도 높은 유리창 접합부의 마감은 외부 소음을 차단한다. 가죽재질의 푹신한 시트에 앉으면 잠시 눈이라도 붙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전반적으로 X5 일반형과 큰 차이는 없다. 다만 운전대와 변속기 등 곳곳에 M 로고가 장식돼 있을 뿐이다. 계기반에 표시된 최고속도가 시속 300km까지인 것도 눈길을 끈다.

안전벨트를 제대로 맸는지 확인한 후 떨리는 마음으로 시동을 걸었다. '부르릉' 거리는 묵직한 엔진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변속기를 'D(주행)'로 옮겼다. 드디어 'M'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손바닥에 땀이 배어나오기 시작했다.

가속페달을 살짝 밟자 생각보다 부드럽게 차가 움직였다. 시속 60km 이하에서는 '반응이 빠르다'는 생각 뿐, '주체하기 어려울 정도의 힘’이라는 M의 평판을 실감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탁 트인 인천대교의 직선 코스를 맞이하며 힘껏 페달을 밟자 순간 엄청난 중력가속도(G)가 온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비행기가 이륙 전 힘차게 활주로를 달려나갈 때 느껴지는 그것과 비슷했다.

앞 유리창에 표시되는 헤드업 디스플레이에 나타난 속도계는 눈 깜짝할 사이에 이 차의 최고 안전속도에 도달했다. 그야말로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의 가속능력이었다. 이 같은 고속주행에 느껴진 당황스러움은 미세한 조정에도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핸들링이 상쇄했다.

앞을 달리던 차가 어느새 가까워졌다. 달리던 속도에서 급작스럽게 제동페달을 밟으면 격렬한 스핀(회전)이 일어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일었다. 긴장되는 마음으로 제동페달을 서서히 밟자 차는 맹렬한 기세를 '언제 그랬느냐'는 듯 감췄다. 운전대에는 손바닥에서 흘러나온 땀이 흥건했다.

드디어 양산형으로 출시된 X5의 M버전의 시초는 어딜까. 지난 1999년, 프랑스에서 열린 내구성을 겨루는 '르망 레이스'에서 그 출발점을 찾을 수 있다. BMW는 당시 X5에 무려 12기통에 달하는 모터스포츠용 초대형 엔진을 이식했다.

이 차는 단 한 대만 만들어진 실험적인 모델로, 속도 면에 있어서는 SUV의 약점인 '큰 덩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페라리, 람보르기니 등 슈퍼카의 주행 기록을 경신한 괴물이다. 그리고 10년이 흐른 올해에 이르러서야 BMW는 양산형 SUV에 M의 호칭을 허락했다. 이제 SUV에서도 스포츠카의 성능을 기대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인천=한경닷컴 이진석 기자 ge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