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차에서 유행하는 요소를 이것저것 가져오는 걸로는 개성을 갖출 수 없습니다. 기아차는 단순하면서도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디자인을 추구합니다."

피터 슈라이어 기아자동차 디자인총괄 부사장(CDO)이 지휘하는 '디자인 기아'의 미래 전략을 공개하며 한 말이다.

슈라이어 부사장은 지식경제부 주최로 3일 인천 송도 컨벤시아에서 열린 '2009 디자인코리아 국제회의'에 참석, '기업을 키우는 디자인'이라는 주제로 강연회를 갖고 최근 기아차가 출시한 준대형 세단 ‘K7' 등 신차의 디자인 방향을 설명했다.

이날 강연회에서 슈라이어 부사장은 "지난 3년간 기아차는 혁신적인 디자인을 선보이며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했다"면서 "브랜드 파워의 강화는 곧 수익성으로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K7' 이어 'K9'도?

슈라이어 부사장은 내년 이후 기아차의 신차 출시계획을 소개하며 한 장의 렌더링 사진을 공개해 이목을 끌었다.

"공개한 사진이 로체의 후속모델이냐, 아니면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진 대형세단 'K9'이냐"는 물음에 슈라이어 부사장은 "예라고도, 아니오라고도 답하지 않겠다"면서 "기아차가 출시할 럭셔리 세단 중 하나"라고 말해 이 차가 K7을 시작으로 그가 진두지휘해 개발하는 K시리즈의 또 다른 모델이 될 것임을 암시했다.

지난 2006년 기아차에 입사해 '로체 이노베이션', '쏘울', '포르테', 'K7' 등 여러 '히트작'들을 선보인 슈라이어 부사장은 최근 기아차가 오는 2011년을 목표로 현대차 '에쿠스'급 4000cc 대형 세단 'K9(프로젝트명)' 개발에 착수함에 따라 이 차의 디자인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강연을 통해 슈라이어 부사장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단순함이야말로 궁극적인 발전'이라는 말을 인용하며 자신의 디자인 철학의 원천을 소개했다.

그는 "다빈치는 개인적으로 매우 존경하는 인물"이라며 "기아차가 추구하는 디자인은 직선의 단순성으로, 단순하면서도 일관성과 연속성을 갖춘 디자인으로 명확한 비전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슈라이어 부사장은 이 같은 디자인 철학이 반영된 모델로 최근 출시된 기아차 'K7'을 지목했다. 이어 "K7은 고급 자동차 시장의 월드클래스급 강자"라며 "단순하고도 정밀한 디자인을 적용, 위엄있는 아키텍처를 완성시키며 기아차에게 있어 또 하나의 변화를 가져왔다"고 소개했다.


기아차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디자인 컨셉트로는 지난 2007년 공개된 컨셉트카 '키(KEE)'를 지목했다. 슈라이어 부사장은 "디자인 철학을 기반으로 단순하며 정밀하게 우아함을 그려냈다"면서 "기아차의 글로벌화를 위해서는 이런 차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가 기아차에 들어와 처음으로 디자인한 이 차는 개발 과정에서 양산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박스카 '쏘울'에 대해서는 "폭스바겐 뉴 비틀이 그랬듯 누가 봐도 알아볼 수 있는 디자인을 구현했다"면서 "한국에서도 개성 있는 차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차로, 기아차를 알리는 데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평했다. 그는 폭스바겐그룹 재직 당시 뉴 비틀을 비롯, 아우디의 'TT'와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 등의 디자인을 주도하며 유명세를 얻었다.

◆'슈라이어호', 기아차 내 입지는?

자신을 기아차로 영입한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슈라이어 부사장은 "서로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으며 비전을 함께 공유하고 있다"면서 "정 회장은 매우 친근하게 느껴진다. 만나서 함께 일하는 게 즐겁고 생산적"이라고 말했다. 또 "우리는 정기적으로 만나 대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 부회장은 기아차 사장으로 재직 중이던 2006년 '디자인 경영'을 선포하며 아우디와 폭스바겐의 수석 디자이너를 지내는 등 '유럽 자동차계의 거장'으로 불리던 슈라이어를 전격 영입했다.

정 부회장은 이후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며 슈라이어의 진보적인 성향을 지원해 왔으나 최근 현대차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김에 따라 '지원사격 범위가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우려를 자아내기도 했다.

이와 관련, 슈라이어 부사장은 "회사 내부에는 보수적인 사람도, 혁신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다"면서 "차량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이를 얼마나 잘 절충하는 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인천=한경닷컴 이진석 기자 ge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