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에 급급하던 국내 광고업계가 대반격에 나섰다. "

제일기획이 3일 온라인마케팅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인 미국 바바리안그룹(TBG · The Barbarian Group)을 인수한 데 대한 국내 광고계의 평가다. 국내 광고회사가 외국업체를 M&A(인수 · 합병)한 것은 제일기획이 유일하다. 이번 TBG 인수전에서 제일기획은 WPP,옴니콤 등 세계 유수 광고업체 5~6곳을 제쳤다. 사실 국내 광고업계는 몇해 전만 해도 살아남기 경쟁을 벌여야 했고 한때 외국계 업체에 시장의 3분의 1을 잠식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거꾸로 외국기업을 사들여 새로운 글로벌화를 시도하는 셈이다.

◆혁신적 아이디어로 유명한 바바리안

2001년 설립된 바바리안은 직원수 75명에 불과한 신생 디지털 광고회사지만 광고계의 아카데미상인 칸 광고제의 사이버부문 대상(2005년),티타늄상(2007년) 등 수상 경력이 화려하다. 애플,구글,GE 등 굴지의 기업을 광고주로 확보하고 있다. 2004년 버거킹 '텐더크리스피 치킨 샌드위치' 마케팅을 위해 만든 홈페이지 'The Subservient Chicken(시키는 대로 하는 닭)'은 입소문 마케팅의 교본으로 꼽힌다. 고객이 요구사항을 입력하면 닭으로 분장한 인물이 이를 따라하고,네티즌들은 닭의 동작을 정리한 별도 사이트까지 만들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그러나 독립 광고사로서 자금력의 한계로 지난해 직원 15%를 해고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창업자인 벤저민 팔머 대표는 미국 광고전문지 '애드에이지'와 인터뷰에서 "경영자율권과 기존 경영진의 독립성을 인정하겠다는 제일기획측 제안이 매력적이었다"며 "세계 25개국에 있는 제일기획 지사를 통해 해외시장에도 진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업체 M&A전략 병행

세계 16위인 제일기획은 전체 광고 취급고 중 해외 비중이 59%에 달하지만 해외에서 파이를 키우는데 한계를 절감해왔다. '덩치'에서 밀리기 때문.세계 1~10위 광고업체 중 8개가 계열화돼 있을 만큼 광고업계의 '그룹화'는 세계적 추세다. 미래 핵심역량으로 꼽히는 디지털 · 인터랙티브(쌍방향) 광고 분야에서 역량을 키우려면 단일 광고회사 만으로는 어렵다는 판단이다.

'글로벌,디지털,통합마케팅'을 3대 성장축으로 내건 제일기획은 그동안 해외지사를 늘리는데 주력해왔다. 그러나 작년 말 영국 독립광고회사 BMB 인수를 계기로 실력있는 해외업체에 대한 M&A도 병행하는 성장전략으로 선회했다. 또 해외에선 아직 '제일(Cheil)'이란 브랜드 인지도가 낮은 만큼 인수한 업체 브랜드를 그대로 쓰면서 규모를 키워 2012년 세계 10위권 '광고그룹'으로 진입한다는 목표다.

◆절대강자 없는 시장 선점 노려

디지털과 아날로그 통합 마케팅은 최근 다양한 시도가 나오고 있지만 아직 절대 강자가 없는 미개척 시장이다. 제일기획은 TBG 인수를 계기로 통합 마케팅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복안이다. 세계 최고 수준인 국내 정보기술(IT)에 TBG의 크리에이티브를 접목시킨다면 승산이 있다고 보고 있다. 최근 국내 본사에 특화된 조직인 'the i본부'를 신설,새로운 글로벌 통합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TBG는 우선 북미시장에 진출한 삼성전자의 온라인 마케팅을 맡게 된다.

제일기획의 이 같은 시도는 국내 광고업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온 · 오프라인 통합 형태의 소비자 접점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기 때문.업계 관계자는 "한때 선진 마케팅 기법과 자금력을 앞세운 외국 광고회사들 탓에 토종 광고업체의 입지가 좁아지기도 했지만 제일기획의 '반격'은 국내 광고계가 업그레이드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