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의 끝이 보이지 않던 지난 3월 서울 남대문로 5가 CJ제일제당 11층 사장실.전사적인 비용 절감을 위해 비상경영체제를 선포한 김진수 사장은 나지막한 어조로 임원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인건비,판매관리비 등 모든 비용을 다 줄이되,단 연구개발(R&D) 예산만큼은 절대 건드려선 안됩니다. "

김 사장의 특명에 따라 CJ제일제당 직원들은 화장실 전구까지 줄일 정도로 허리띠를 졸라 맸지만,R&D에는 오히려 공격적으로 투자했다. 실제로 CJ의 올 3분기까지 판매관리비 비중은 전체 매출의 21.8%로 2년 전(26.8%)보다 5%포인트 낮아졌다. 하지만 올해 R&D 투자비는 572억원으로 지난해보다 오히려 14% 이상 늘렸다. 식품,바이오 등 회사에 소속된 연구원만 500명이 넘는다.

결과는 즉시 나타났다. 시장점유율 전문 조사기관인 닐슨의 소매판매 조사자료에 따르면 CJ제일제당은 올해 연간 누적으로 총 24개 품목에서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소규모 시장을 갖고 있는 제품들이 많은 식품업계 특성을 감안해 시장 규모가 100억원 이상인 품목에 한해 집계한 결과다. 2005년의 14개 품목보다 10개나 늘어났다. 국내 대다수의 종합식품업체들이 한 자릿수의 1위 품목을 갖고 있는 것에 비해 2~3배 많은 수치다. 신동휘 CJ 홍보 상무는 "맛밤,쁘띠첼 등 CJ제일제당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품목은 이번 조사대상에서 뺐으며 이를 포함하면 총 1위 품목 수는 30여개에 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CJ는 지난해 3조4949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올해도 3분기까지 2조9565억원을 기록해 연간 매출이 4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보다 10%가량 신장한 수치다. 이 같은 실적에는 리딩 브랜드들의 선전이 큰몫을 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햇반,다시다,설탕,스팸 등 기존 1위 품목 외에 최근 3~4년간 새로 추가된 품목들은 산들애,하선정 액젓,해찬들 고추장,쌈장,삼호 어묵,카놀라유 등이다. 이 중 인수합병(M&A)을 통해 인수한 해찬들(2005년 12월) 삼호F&G(2006년 2월) 하선정(2006년 12월) 등의 주력 품목들이 모두 점유율 1위를 달성해 그간의 M&A 활동이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이 밖에 경쟁이 치열한 즉석밥 시장에선 CJ 햇반이 농심,오뚜기,동원 등의 잇단 진출에도 69.1%의 독보적인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의 R&D 중시 전략은 전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최근 세계 최초로 쌀 미강 단백질과 천연 조미소재인 네이처펩의 개발에 성공,양산 체제에 들어갔다. 김 사장은 "다양한 고부가 가공식품,바이오제품에 대한 R&D를 강화하고 있다"며 "앞으로 세계시장에서도 승부할 수 있는 제품 개발을 위해 R&D 투자를 지속적으로 늘려 첨단 식품회사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