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와 한국노총이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문제를 놓고 최후 담판에 나섰다. 한국노총의 백헌기 사무총장과 손종흥 사무처장,경총의 김영배 상근 부회장과 남용우 노사대책본부장은 1일 서울 모 호텔에서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문제를 놓고 협상을 벌였으나 접점을 찾지 못하고 헤어졌다. '준비기간을 둬야 한다'는 한국노총과 '규모별 단계적 시행은 받아들일 수 있어도 미뤄서는 안 된다'는 경총의 입장이 맞선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은 2일 오전 중 최종 합의를 시도하겠다고 밝혀 막판 타결의 가능성을 남겼다. 여당과 정부는 양측이 합의안을 도출할 경우 적극 수용한다는 방침이다.

◆막판 타결에 접근하나

경총은 복수노조의 전면 시행이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한국노총은 '3년간 재유예'를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복수노조와 관련해서는 노사 간 절충안이 마련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문제는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다. 경총은 원칙적으로 시행해야 하며,전면 시행이 어렵다면 기업 규모에 따라 순차적으로 도입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총 관계자는 "또다시 유예해서는 안 된다"며 원칙적 시행을 재차 강조했다.

반면 한국노총은 준비기간을 가진 후 시행하자는 입장이다. 수용할테니 전임자 축소와 재정 확충을 위한 준비기간을 달라는 요청이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민주노총과의 공조 파기까지 감내하며 양보안을 내놓은 만큼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고 말했다.

이날 노사는 절충안 마련에는 실패했지만 합의안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데는 공감하는 분위기였다고 한 회의 참석자가 전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노 · 사 · 정 6자회의와는 달리 의견폭이 어느 정도 좁혀진 만큼 어떻게든 공통분모를 찾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복수노조 재유예로 가닥

여당인 한나라당은 노사가 2일까지 협상을 벌인 뒤 합의안을 이끌어내면 이를 가지고 정부와 조율해 올해 안에 개정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합의에 실패하면 여당이 당론을 정해 밀고 나가겠다는 방침이다.

여당 내부에서는 '복수노조는 3년간 유예하되,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는 일정 규모 이상 대기업부터 순차적으로 시행'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당 고위 관계자는 '두 가지 모두 3년간 유예하는 방안이 당론으로 정해졌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일부 의원들의 의견이 확대된 것"이라며 "노사가 복수노조와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유예안에 합의하더라도 둘 다 미루기는 곤란하다는 당내 의견이 많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복수노조는 노사 모두 전면 시행에 반대하는 만큼 유예하고,대신 전임자 문제를 먼저 시행하되 노동계 반발을 고려해 1만명 이상 노조부터 순차적으로 시행하는 방안에 힘이 실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그러나 유예안은 받아들일 수 없음을 재차 강조했다. 임태희 노동부 장관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복수노조와 전임자 문제를 이번 정권이 끝나는 3년 동안 유예하자는 것은 사실상 하지 말자는 것과 같다"면서 "이것을 준비기간으로 볼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임 장관은 "노사가 합의안을 내놓더라도 유예하자는 내용이라면 이는 합의가 아니라 담합"이라고 강조했다.

◆전임자 무임(無賃) 순차적 시행 논란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기업 규모별로 순차적으로 시행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이에 대한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여당과 정부 내에서는 1만명 이상 노조부터 시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국내 기업 노조 중 1만명이 넘는 사업장은 11곳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노동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 노동전문가는 "규모가 9900명인 기업의 노조와 1만명인 노조가 있을 경우 어떻게 할 것이냐"며 "형평성에서 문제가 될 수 있을 뿐더러 기업 규모가 변할 수 있는 현실을 무시하고 일률적으로 규정해 놓는다면 차후에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대차도 "적당한 타협은 노사관계 선진화를 추진하겠다는 원칙에서 벗어난 것"이라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등을 법대로 내년에 전면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극소수의 사업장에만 적용할 경우 법률의 보편적 타당성이 결여될 수밖에 없다"며 "모든 노조에 전면 시행하되 재정이 열악한 300명 이하 사업장에 한해 일정기간 유예하는 방안은 검토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경봉/김현예/구동회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