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뱀파이어의 유혹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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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어 소설ㆍ드라마ㆍ가요 등으로 확산
경제시름 덜어줄 새 수퍼영웅 기대감 반영
경제시름 덜어줄 새 수퍼영웅 기대감 반영
뱀파이어 에드워드는 인간 소녀 벨라가 자신으로 인해 위험에 처하자 냉정하게 그녀의 곁을 떠난다. 절망한 벨라는 오랜 친구 제이콥의 위로로 버텨낸다. 그러나 제이콥은 뱀파이어를 적대시하는 늑대인간이다. 마침내 벨라를 둘러싸고 에드워드와 제이콥이 충돌하게 된다.
2일 개봉하는 할리우드 뱀파이어 영화 '뉴문'의 줄거리다. 이 영화는 최근 미국에서 열흘 만에 2억3000만달러를 벌어들이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트와일라잇'의 속편 격인 이 영화는 한 마디로 뱀파이어 남자와 인간 소녀 간의 로맨스물."넘넘 재미있어요" "남자한테는 그저 그랬지만 여자 친구는 많이 좋아한다" 등의 댓글이 쏟아지며 국내에서도 흥행을 예고한다.
한국 영화로는 지난 4월 박찬욱 감독의 '박쥐'가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고 관객도 300만명을 동원했다. 뱀파이어가 된 신부가 친구의 아내와 위험한 사랑에 빠지는 내용이었다. 전지현이 주연한 '블러드'도 뱀파이어 영화다.
영화뿐 아니다. 방송 드라마와 소설에도 뱀파이어 물들이 쏟아지고 있다. 케이블채널 올리브는 뱀파이어 사립 탐정의 활약을 담은 '문라이트'(월~목 오후 8시)를 인기리에 방송 중이다. 60여 년 전 아내에 물려 뱀파이어가 된 사립탐정이 뱀파이어가 연루된 사건들을 풀어간다. 사건 현장에서 만난 여기자와 펼치는 로맨스도 곁들여진다.
수퍼액션채널은 '뱀파이어 헌터:버피'를 매주 금요일 낮 12시부터 3편 연속 방송 중이다. 뱀파이어를 무찌르는 퇴마사 운명을 받고 태어난 철없는 여고생 '버피'가 세상의 악과 대적하는 내용이다. 캐치온은 오는 11일부터 미국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뱀파이어 다이어리'시리즈를 방송한다. L J 스미스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뉴욕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두 뱀파이어 형제와 인간 소녀의 로맨스를 그려냈다.
출판시장에서도 뱀파이어의 활약이 돋보인다. '트와일라잇''뉴문' 등 영화의 성공에 앞서 원작인 스테프니 메이어의 《트와일라잇》 시리즈(전4권)는 먼저 출판계에서 엄청난 돌풍을 일으켰다. 이 시리즈는 전세계적으로 8500만부(10월 집계 기준) 팔려나갔으며,국내에서도 130만부 넘게 판매됐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 세계 주요 선진국들의 베스트셀러 집계에서도 트와일라잇 시리즈와 더불어 뱀파이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책들이 여럿 진입하기도 했다.
뱀파이어가 이처럼 인기를 누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섭기만 했던 뱀파이어 캐릭터가 '선망의 대상'으로 역할을 달리하는 게 컸다. '뉴문'의 뱀파이어 에드워드는 여성들이 원하는 완벽한 남성상을 제시한다. 멋지고 지적이며 도덕성도 뛰어나다. 에드워드는 벨라의 피를 마시고 싶은 욕구를 누른다. 오히려 벨라가 에드워드에게 물려 뱀파이어가 되고 싶어한다. 그들은 평생 단 한 번뿐이란 고전적인 사랑을 보여준다. "너는 내가 존재하는 이유야" "너의 향기가 가장 큰 선물이야" "네가 없으면 나도 없어" 등 에드워드가 속삭이는 사랑의 밀어는 벨라뿐 아니라 여성팬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에드워드는 근육질 몸매에 총알처럼 빠르고 슈퍼맨처럼 강력하다.
낮에 활동할 수 없거나 관에서 잠자며,마늘과 십자가에 매우 약했던 기존 뱀파이어들의 치명적인 단점도 버렸다. '박쥐'의 뱀파이어 신부나 미드 '뱀파이어 다이어리''문라이트' 등의 주인공들도 에드워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뱀파이어가 더 이상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친근한 대상이자 인간을 지켜주고 사랑에 헌신적인 새로운 슈퍼영웅이다. 한마디로 캐릭터와 스토리가 진화한 것이다. 하나영 캐치온 편성PD는 "과거 영화나 TV시리즈의 뱀파이어들은 인간을 하나의 먹잇감 정도로 생각했고,인간들이 두려워하고 혐오스러워하는 존재로 부각됐지만 최근 뱀파이어들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고뇌하고 사랑에 목말라하며,자신의 정체성에 괴로워하기 때문에 공감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뱀파이어 붐이 경제위기와도 연관돼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일자리 상실에 따른 두려움과 불안이 팽배한 시대에 막강한 힘을 지닌 영생의 존재로 카리스마가 넘치는 뱀파이어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