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진한 주가 흐름을 보이고 있는 일부 상장사의 대주주가 자사 주식을 사서 지분을 늘리고 주가도 부양하는 '양수겸장' 효과를 노리고 있다.

증시에서 주도주의 부재로 마땅한 투자처를 선정하기가 궁색한 요즘, 기업 '내부자'의 움직임은 투자 판단에도 좋은 참고사항이 된다는 조언이다. 특히 '내부자 중의 내부자'인 최대주주, 회장, 사장, 대표 등이 자기돈을 들여 장내에서 사는 종목은 주목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2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영원무역홀딩스는 이달 들어서만 자회사 영원무역의 주식을 106만여주나 매수했다. 이에 따라 영원무역홀딩스와 특별관계자의 영원무역 보유지분은 기존 38.9%에서 41.5%까지 상승했다.

영원무역은 지난 7월말 영원무역홀딩스와 분할해 재상장된 이후 지난달까지 부진한 주가 흐름을 보였다. 그러나 최대주주의 '사자' 등에 힘입어 이달엔 20%나 상승했다. 최근엔 외국인투자자들도 7거래일째 영원무역 주식을 순매수하며 주가 상승을 뒷받침하고 있다.

증권업계에서는 최근의 원화 강세가 수출기업 영원무역의 실적에 부담이긴 하나, 신발이나 니트 등 신사업을 확대하고 있고 기존 의류 주문량도 많아지고 있어 중장기적 관점의 실적 전망 밝다고 보고 있다.

최신원 SKC 회장도 최근 자사 주식을 늘리는데 열심이다. 최 회장은 지난 6월 이후 이달까지 장내에서 5만2500주를 매입, SKC 지분을 3.32%(120만1703주)로 끌어 올렸다. 이달에만 8000주를 매수했다.

SKC는 지난 3분기 장사를 잘 하고도 계열사의 실적 부진 탓에 주가가 조정을 받았다. SKC의 3분기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전분기 대비 각각 11%와 43% 늘어난 3299억원과 291억원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세전이익은 SK해운 SK텔레시스 등에 대한 268억원의 지분법 손실이 반영돼 적자 전환했다.

SKC의 주가는 실적이 발표된 이달 초를 전후로 15% 가량 급락한 이후 횡보하다 전날까지 최근 사흘 연속 상승하며 다소 회복하는 모습이다.

LED(발광다이오드) 조명업체 화우테크놀러지의 유영호 대표도 지난 9월 이후 자사 주식을 꾸준히 사고 있다. 유 대표는 최근 3달간 9만여주 넘게 추가 매수, 보유주식수를 277만9180주(지분율 30.21%)까지 확대했다.

올 하반기 이후 주가가 부진한 흐름을 보이자 최대주주이기도 한 유 대표 본인이 직접 나서 주가부양 의지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회사 관계자는 "LED 부문의 투자 성과가 4분기부터 가시화 될 것으로 본다"며 "매출이 300억원에 이르는 등 실적이 크게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지난 3분기에 매출 189억원, 영업이익 22억원의 실적을 거뒀다.

증권업계에서는 대신증권과 유화증권의 '회장님'이 장내에서 지분을 늘리는 모습이다.

이어룡 대신증권 회장은 올 들어 장내에서만 10만4270주를 취득, 보유주식수를 89만9270주(0.77%)로 확대했다. 이 회장의 아들이자 최대주주인 양홍석 부사장도 최근 두 달 새 6만1680주를 더 사 288만1699주(5.68%)까지 늘렸다.

대신증권은 최대주주의 지분이 적어 증권가에서 끊임없이 인수ㆍ합병(M&A) 구설수에 휘말리곤 했다. 그러나 올 들어 이 회장과 양 부사장 모자의 지분 추가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양재봉 명예회장의 지분확보까지 더해져 다소나마 오너 일가의 지분이 확대되고 있다. 대신증권 관계자는 "주가가 쌀 때 대주주가 지분을 더 확보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윤장섭 유화증권 회장은 최근 몇 해 동안 꾸준히 자사 주식을 사고 있어 주목된다. 윤 회장은 올 들어서만 보통주 1만9180주, 우선주 1만6760주를 매수했다. 증여한 주식 9만주를 빼더라도 윤 회장은 보통주 133만여주(11.73%)와 우선주 72만여주를 보유하고 있다.

이밖에 에스에프에이의 최대주주인 디와이에셋과 현대엘레베이터의 최대주주 현대택배가 올 들어 각각 10만여주와 24만여주를 분할 매수했고, 인포뱅크 신일제약 케이프 등도 대주주가 꾸준히 지분을 늘리고 있다.

이좌근 동부자산운용 최고운용책임자(CIO)는 "대주주가 자기 돈을 들여 장내에서 지분을 확대하는 것은 그만큼 해당 회사의 주가가 싸다는 방증"이라며 "회사에 대해 내부자가 가장 잘 아는 만큼, 투자 판단에도 좋은 참고사항"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대주주의 '보유주기식' 자사주 취득도 종종 있기 때문에 회사의 펀더멘털을 먼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한경닷컴 안재광 기자 ahnj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