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물어주고 싶도록 앙증맞은 외모와 미소. 하지만 입에서는 30대 중반의 숙녀나 할 듯할 의젓하고 무게 넘친 얘기가 나온다.

리듬체조 '요정' 손연재(15.광장중3)가 내년 시니어 무대에 데뷔한다.

수십만 '삼촌'을 보유했고 미니 홈페이지에 18일 현재 48만명이나 다녀갔을 정도로 인기 높은 '꼬마 숙녀'가 드디어 본격적인 경쟁의 장에 들어서는 것이다.

국제체조연맹(FIG)은 16세 이상부터 세계선수권대회, 올림픽에 나설 수 있도록 규정했다.

손연재가 올해까지 '주니어'라는 울타리에 갇혔다면 내년부터는 여러 선배 언니들과 태극마크를 놓고 학년, 나이를 떠나 무한경쟁을 치러야 한다.

중학교 대회에서 손연재를 따라올 선수는 없었다.

지난해 각종 국내대회에서 9관왕, 올해 6관왕을 휩쓴 손연재는 지난 15일 슬로베니아에서 끝난 리듬체조챌린지대회에서 후프와 줄, 개인 종합 등 3종목에서 정상을 밟고 마지막 주니어 무대를 화려하게 마쳤다.

2년 만에 출전한 국제대회, 그것도 FIG가 공인하는 세계적인 대회에서 딴 금메달 2개(개인종합 부상은 트로피)를 당당하게 목에 걸고 17일 귀국한 손연재를 '연합뉴스 LIVE 인터뷰'에서 만났다.

화사한 미소를 띠고 자신의 생각을 또박또박 말하는 모습은 빼어난 기량 못지않게 프로다웠다.

또래처럼 맘껏 못 놀고, 먹고 싶은 피자도 참아야 하는 등 욕구를 이겨내야 하지만 손연재는 "연습을 하다 보면 시간은 쉴새 없이 흘러가니까"라고 말할 정도로 대범했다.

◇아쉽고 설렌 마음


손연재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주니어 무대를 끝내 아쉽기도 하지만 시니어 무대를 생각하면 설렌다.

많이 연습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손연재의 마지막 주니어 경기는 완벽했다.

제11회 슬로베니아챌린지대회에서 출전 선수 18명 가운데 성적이 독보적이었다.

기본 종목인 후프에서 23.467점을 받아 2위를 2점차로 눌렀고 나머지 3개 종목 중 줄 종목에서 23.550점을 획득, 또 1위를 했다.

전체 합산점수에서는 2위를 3점 가까이 따돌리고 3관왕을 달성했다.

2007년 슬로베니아 월드컵 대회에서 5위를 했던 손연재는 2년 만에 같은 나라에서 부쩍 성장한 모습을 뽐냈다.

손연재처럼 비행기를 15시간 이상 타고 슬로베니아까지 날아간 선수는 없었다.

출전 선수 17명의 국적은 벨기에, 키프로스, 세르비아, 러시아, 이탈리아, 슬로바키아, 크로아티아 등으로 다양했지만 모두 '엎드리면 코 닿을' 리듬체조 인기지역 유럽에서 온 선수들이었다.

손연재는 이들과 맞서 4종목을 모두 뛰었고 가장 좋아하는 볼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한다.

종목별 결승까지 다 치렀다면 금메달 숫자는 더 늘었을지도 모른다.

동행한 김지희 대표팀 코치는 "여러 심판이 손연재의 연기를 보고 많은 칭찬을 해줬다.

특히 FIG에서 파견한 한 심판은 '연기가 너무 완벽하다.

앞으로 더 기대가 된다'고 호평했다.

지도자로서도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손연재도 경기 후 점수를 보고 스스로 놀랐을 정도로 유럽의 심판들은 아시아에서 날아온 요정의 몸짓에 흠뻑 반했다.

손연재가 국제 대회에 출전하기는 이번이 세 번째. 2007년 말레이시아 에인절컵에서 우승한 뒤 이번이 2년 만이었다.

"FIG 주관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 더욱 뜻깊다.

처음에 비행기를 탈 때 '실수없이 작품을 잘 하자. 등수, 메달 생각하지 말고 노력하자'고 했는데 좋은 결과를 얻었다"며 손연재는 웃었다.

1학년 때 2등을 세 차례 했을 뿐 2학년이던 지난해부터 전 대회를 석권한 손연재는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올라오면서 규정이 바뀌고 많이 힘들었는데 중학교 시절을 나름대로 잘 보낸 것 같다.

고등학교에 가면 수구를 다루는 기술을 배우는데도 어려울 것 같은데 더 열심히 훈련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김지희 코치의 열성 지도와 후원사의 적극적인 지원

리듬체조 강국 러시아에서 선진 지도력을 배워온 김지희(39) 대표팀 코치와 만남은 손연재의 어깨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었다.

김 코치는 '간판' 신수지(18.세종대1)의 코치이기도 하다.

손연재의 어머니 윤현숙씨는 "김 코치의 지도로 2년 만에 연재가 부쩍 성장했다"고 말했다.

손연재를 지도하던 코치가 개인 사정으로 그만두면서 김지희 코치를 추천했다.

한번 몰입하면 끝을 보는 성격인 김 코치는 러시아 체조 인맥 등을 활용, 손연재의 기량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했다.

5살 때 세종대 사회복지관에서 운영한 취미 프로그램에 참가해 리듬체조에 입문한 손연재는 김 코치의 지도로 실력이 늘면서 '리듬체조에서 대성하겠다'는 생각을 굳혔다고 한다.

그런 뒤 악착같이 훈련했고 살이 찌지 않으려고 체중을 관리하는 절제의 미학 등을 어린 나이에 터득했다.

요즘도 강렬한 연기에 필요한 발레 과외를 꾸준히 받는다.

손연재가 잘 나가면서 열성 엄마 윤현숙씨도 리듬체조를 하는 선수들의 엄마들로부터 유명 인사로 떠올랐다.

윤 씨는 "비결을 여쭙는 어머니들도 많이 계신다"면서 "선수들에게 필요한 근력 운동, 병원 치료 요령 등을 수시로 말씀드린다"며 수줍게 웃었다.

윤 씨는 "리듬체조는 관절을 많이 쓰는 운동이다.

연재가 시니어 무대에서 부상 없이 활약하는 게 큰 목표다.

앞으로 힘든 동작이 많아질 텐데 근력도 더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후원사의 적극적인 지원은 손연재 가족의 부담을 덜어줬다.

지난 7월 스포츠용품제조업체인 휠라 코리아와 3년간 계약한 손연재는 보석업체 J.에스티나, 천연과일음료 업체 스무디킹으로부터 후원을 받는다.

1년에 받는 후원금은 3천만원~5천만원 수준이다.

덕분에 지난 6월 러시아 전지훈련을 다녀왔고 22일에도 한 달간 러시아 모스크바로 동계훈련을 떠난다.

에이전시인 IB 스포츠에 따르면 건강 다이어트 식품 업체로부터 손연재를 광고모델로 쓰고 싶다는 제의도 계속 들어온다고 한다.

피겨 요정 김연아(고려대)가 커 가던 모습과 비슷하다.

손연재는 "꼭 내년 대표선발전에서 태극마크를 달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따고 싶다"고 말했다.

손연재의 '유망주'의 꼬리표 떼기가 이제 막 시작됐다.

(서울연합뉴스) 장현구 기자 cany9900@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