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공개된 전국 고교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 순위에서 상당수의 오류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일각에서는 모든 수험생이 거의 모든 과목을 치러야 했던 과거 학력고사 방식과는 확연히 다르게 수능시험 자체를 안 볼 수도 있고, 영역과 과목 선택이 자유로운 수능시험을 토대로 학교별 성적 순위를 매긴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수능성적 공개 문제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 고교별 성적, 무엇이 잘못됐나 = 15일 일선 고교 등 교육계 일각의 주장에 따르면 최근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실을 통해 일부 언론에 공개된 전국 고교별 수능 성적 순위에 수능에 응시하지 않은 학생들의 성적까지 모두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응시하지 않은 학생들은 아예 제외하고 평균을 내는 등 학교별 성적을 산출했어야 하는데, 이들의 성적을 `0점'으로 처리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성적 순위 자체가 잘못되는 오류를 범했다는 것이다.

현행 수능은 완전 선택 체제여서 수험생이 지망할 대학, 모집단위에 따라 언어, 수리, 외국어 등 영역을 각자 선택해 응시하게 돼 있으며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가진 수능 원자료에는 응시하지 않은 영역의 경우 `0'이라는 전산 코드가 입력돼 있다.

이번에 발표된 성적 순위는 평가원과 교육과학기술부가 조 의원실에 제공한 수능 원자료를 토대로 산출한 것이며, 분석 과정에서 `0'이라는 코드를 `0점'으로 잘못 이해해 분석에 집어넣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학교별 순위 자체가 뒤엉켰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보통 수능에서 예체능계 지원자 상당수는 수리 영역에 응시하지 않고 과학고 학생들의 경우도 수학 등 이공계 점수로만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전형이 있어 언어 영역을 보지 않기도 하며 수능성적을 반영하지 않는 수시모집에 합격한 학생은 정시 지원 자체가 의미가 없어 수능시험 원서를 내고도 응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지난 12일 실시된 올해 수능을 보면 원서 접수자 기준으로 총 67만7천834명의 수험생이 지원했으며 이중 언어영역에는 67만6천956명, 수리는 63만6천408명, 외국어(영어)는 67만5천547명이 지원해 영역별 응시자가 제각각이었다.

물론 응시자에 비해 영역별 미응시자가 아주 많다고는 볼 수 없지만 고교 교사들은 미세한 성적 차이로 인해 학교별 순위가 뒤바뀔 수 있다며 지금이라도 교과부가 나서 정정 자료를 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다른 영역에 비해 미응시자가 많은 수리 영역만 보더라도 예체능계 응시자를 빼고 다시 분석하면 여고와 남녀공학의 성적이 당초 발표된 것보다 높게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의 한 고교 교사는 "당장 대학 입시에서 입학사정관들이 잘못된 자료를 학생 선발에 참고할 수 있고 서울의 고교선택제를 앞두고 학부모들 역시 이 자료에 의존할 수 있다"며 "하루빨리 잘못된 내용을 정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성적 공개 자체가 무리·무의미" = 교육계 일각에서는 애초 수능 성적을 토대로 고교별 순위를 매긴 것 자체가 잘못인 만큼 성적 공개 문제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과거의 학력고사와 달리 수능시험은 모든 응시생이 동일한 조건으로 보는 시험이 아니다.

다시 말해 수험생 개인이 원하지 않으면 일부 영역에 응시하지 않을 수 있으며 수능성적을 보지 않는 수시에 합격한 학생은 정시 지원 자체가 금지돼 있어 수능시험을 아예 치르지 않기도 한다.

또 이번 성적 분석에는 재수생 성적도 포함돼 있는데, 해당 학교의 교육력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재수생들의 성적을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근본적으로 수능성적 원자료에는 학교의 배경적 요인이나 고교 입학 당시의 성적, 학생들의 생활수준, 가정환경 등 성적이 높고 낮음의 원인을 유추할 수 있는 정보가 전혀 없어 수능 성적을 학교 평가의 대상으로 삼는 것 자체가 오류라는 지적도 나온다.

예를 들어 사교육이 성행하는 지역에 있는 학교, 생활수준이나 소득이 높은 지역의 학교 또는 가정의 학생이 성적이 높게 나온다는 사실이 이미 수많은 연구 결과를 통해 밝혀졌는데도 이번 성적 공개는 단순히 전국 고교를 수능 성적을 토대로 서열화하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수능 성적이 좋은 학교가 잘 가르치는 학교'라는 인식을 심어줬다는 것이다.

외국어고 등 특수목적고의 수능성적이 높은 이유도 입학 당시부터 `좋은 학생 자원'을 보유했기 때문이어서 이를 일률적으로 해당 고교의 교육 수준이 높다는 쪽으로 해석하기는 곤란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결국 이런 논란의 책임은 수많은 오류 가능성과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조 의원들 비롯한 국회의원들에게 수능 원자료를 선뜻 제공한 정부에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정부는 학교 서열화 등을 우려해 수능 시험이 실시된 이래 지금껏 수능 원자료를 한 번도 외부에 공개한 적이 없으나 `정보 공개를 통한 경쟁' 기조를 내세우는 새 정부 출범 이후 방침을 바꿔 지난 7월 `연구목적'이라는 단서를 달아 수능 원자료를 의원들에게 내줬다.

아울러 그동안 고교.지역 간 학력격차 논란이나 고교평준화 체제에 대한 시비가 수십 년째 반복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당국이 수능성적 등을 토대로 고교간 학력차를 극복하고 평준화제도가 갖는 문제점 등을 분석해 이를 시정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이 근본 원인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교과부 관계자는 "학교서열화 정보를 정부가 직접 제공할 수는 없다는 입장은 동일하다"며 "정부 차원에서 수능성적 자료를 다시 한번 분석해 이러한 문제점을 일으키지 않는 방향으로 내달 중 결과를 내놓겠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윤영 기자 y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