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광양제철소 자동차 강판 430만t 생산,해외 유명 자동차회사 수출망 확대,창사 이래 최고 실적,2002년 민영화 이후 영업이익 400% 신장….'

포항제철에서 포스코로 사명을 바꾼 지 3년 만에 이룬 '기적'이었다. '2007년까지 300만t의 자동자용 강판을 판매하겠다'고 밝힌 '홍콩선언'을 2년이나 앞당겨 초과 달성했으니 모두들 샴페인을 터뜨리며 기뻐할 만했다.
그러나 2006년 새로 부임한 허남석 광양제철소장(현 부사장)은 '사상 최대 실적'에 만족하고 있는 사원들을 보면서 '또 다른 위기의식'을 느꼈다. 세계 최고의 기술을 자랑하는 일본 제철소는 신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중국은 10개의 제철소를 지으며 바짝 추격해오는 상황에서 현재의 성과에 만족하는 것은 곧 퇴보를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몇 달 동안 고민하던 그는 새로운 비전을 선포하기로 결심했다. 2006년 7월4일,광양만의 백운아트홀에 '광양제철소 비전 선포식' 'Global No.1 자동차 강판 전문 제철소 완성'이라는 대형 현수막이 걸렸다.

광양제철소의 전임 소장이던 정준양 사장이 "오늘 흑자를 냈다고 해도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게 철강업계의 상황"이라며 "2008년까지 글로벌 넘버원 자동차 강판 전문 제철소를 완성하는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포스코와 외주파트너사,지역이 힘을 합치자"고 강조했다.

이어 단상에 오른 허 소장은 '혁신속도론'을 펼치기 시작했다. "혁신의 고삐를 한 번도 늦춘 적 없지만 지금의 속도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이제껏 해온 혁신을 계속하되 더 빨리,더 철저하게 해야 합니다. "

그동안 생산량 초과 달성이나 신기술 발표 같은 '자랑'에 익숙했던 사람들에게 이날의 비전선포식은 충격적이었다. 눈앞의 위기를 강조하며 동참을 호소하는 허 소장의 표정은 비장했다. "자동차 강판을 신일본제철의 수준까지 끌어올리지 못하면 아무리 비전을 선포하고 밀어붙여도 결코 글로벌 넘버원이 될 수 없습니다. "

이날 빗속에서 이뤄진 비전선포식은 직원들의 가슴에 불덩어리를 하나씩 안겨주었다. 회사가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부인들은 남편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며 힘을 북돋워줬고,광양시 관계자들도 광양제철소가 일본을 능가하는 자동차 강판을 만드는 날까지 지역 사회가 힘을 보태주어야 한다며 마음을 합쳤다.

《강한 현장이 강한 기업을 만든다》는 이때부터 3년간 포스코가 일궈낸 혁신의 모든 기록을 담은 책이다.

포스코 혁신활동의 핵심은 '강한 현장에서 최고 품질이 나온다'는 기본 철학과 '기존의 성공을 토대로 또다시 뼈를 깎는 혁신으로 더 큰 성공을 쟁취한다'는 것.특히 국내 유수 기업들이 앞다퉈 벤치마킹하는 '포스코형 식스시그마' 전략이 돋보인다. 이는 재무성과와 기술개발을 위해서는 식스시그마를 적용하며,일상적인 낭비를 없애고 현장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QSS(퀵-식스시그마)를 활용한다는 맞춤형 혁신 모델이다.

포스코식 혁신의 두 축은 '죽은 설비도 살려내는 마이머신 활동'과 '일을 드러내서 낭비를 없애는 비주얼 플래닝(VP)'.마이머신 활동은 정리 · 정돈 · 청소 · 청결을 습관화해 현장의 낭비와 무질서를 제거하는 현장개선 활동을 말한다.

간부들이 솔선수범해 기계의 묵은 때를 벗겨내고 기름범벅이 된 채 도시락을 먹으며 현장개선에 나서자 직원들이 동참했고,제철소 전체에 마이머신 열기가 확산됐다.

VP는 합의를 통해 어떤 일을 누가,언제 할 것인가를 정한 후 월 · 주 · 일 단위로 상세하게 계획을 세워 보드에 적는 계획관리 프로그램.팀원의 이름과 얼굴이 나열된 VP 보드에 일상 업무와 혁신 관련 업무,돌발적인 비계획 업무로 구분한 컬러 포스트잇을 붙여 모든 일을 한눈에 알 수 있게 한 것이다.

올해 정준양 회장이 취임하면서 이는 열린 경영의 핵심 활동으로 선정돼 포스코 패밀리사 전체로 확대됐고 포스코 고유의 모델로 진화하면서 농심,웅진 같은 국내 기업으로 빠르게 전파되고 있다.

이 책에는 이처럼 일과 시간의 낭비를 획기적으로 줄인 'VP',일하는 공간을 완전히 뒤바꾼 'QSS와 마이머신 활동',일 · 혁신 · 학습의 삼위일체를 통해 완성한 '혁신의 삼각형' 등 포스코의 혁신 모델이 구체적으로 소개돼 있다.

책장을 넘기다보면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1위'에 오른 글로벌 포스코의 핵심역량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