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3남 김정은의 후계설이 나돌던 지난 4월 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 헌법'을 개정한다. 1948년의 헌법 제정 이래 4번째 개정으로 '공산주의'라는 단어를 법 조문에서 삭제하고,'선군(先軍)'과 '주체사상'을 양대 헌법정신으로 명기했다.

이전의 북한 헌법 개정은 1998년 9월에 있었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3년간의 '유훈통치'를 거쳐 1997년 10월 김정일 위원장이 노동당 총비서에 추대된 1년 뒤다. 국방위원장에 무한권력을 부여해 김정일 체제를 견고하게 떠받치기 위한 것이었다. 올해 헌법 개정이 김정은에게 통치권을 물려주는 포석으로 해석되는 이유다.

그런데 1998년의 개정 헌법 내용이 기이(奇異)하다. 서문(序文)을 신설해 헌법 명칭을 '김일성 헌법'으로 규정한 것이다. 상식과 이성을 넘은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서문을 구성하는 열다섯 문장 가운데 열세 문장의 주어가 '김일성 동지'이고,헌법상 그의 호칭은 '공화국 창건자이자 시조''민족의 태양''세계정치 원로''사상이론과 영도예술의 천재''강철의 영장''위대한 인간''영원한 주석' 등이다.

지구상에 유례가 없을 이런 헌법을 만들고,김일성의 영생(永生)을 강조한 의도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김정일과 그 후대로 이어지는 세습왕조를 합리화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 구축인 것이다. 그래서 이제 약관(弱冠)을 겨우 벗어난 김정은으로의 3대째 권력승계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그것이 북한 통치구조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이런 체제에서 북한 경제가 인민들의 기본적인 먹거리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한 채 피폐하기 짝이 없는 상황인 것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 취약한 경제마저 중국에 의해 완전히 지배되고 있다.

2008년 남북교역을 제외한 북한의 수출입 총액은 38억1500만달러,이 중 중국과의 교역은 27억8700만달러로 그 의존도가 무려 73%였다(KOTRA,북한대외무역동향).북의 주력 수출상품은 무연탄 · 철광석 등 지하자원과 수산물이고 수입품목은 식량과 석유 등 전략물자가 대부분이다. 중국은 또 지난해 북한의 해외 투자 4400만달러 가운데 4100만달러로 90%이상을 차지했다.

얼마 전 북한을 방문한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신의주와 압록강변 개발 등 대규모 투자협정을 맺었다. 자국 경제발전을 위한 한반도의 현상유지 전략,북한에 대한 영향력 증대와 자원 및 개발이익 선점을 위한 계산이 깔려있음은 물론이다. 북한 경제의 중국에 대한 종속구조가 더 심화될 수밖에 없고,그 절대적인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지난 9일은 옛 동 · 서독을 가로막았던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지 20년째 되는 날이었다. 독일 통일의 경험이 우리에게 어떤 시사점과 과제를 주고 있는지 많은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물론 1989년의 베를린장벽 붕괴처럼,우리의 통일도 예상하지 못했던 우연한 사태들이 연속적으로 전개되고 그것들이 상호작용을 통해 필연으로 이어지면서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오늘 북한의 정치 · 경제 · 사회구조가 과거 동독의 그것과 얼마나 다른지 실체적 현상(現狀) 또한 보다 냉정하게 따져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때 미국과 러시아가 독일 통일을 도왔지만,지금 한반도 주변 강대국의 셈법은 다를 수밖에 없다.

오랫동안 우리는 '햇볕'과 대화 · 협력 · 지원을 얘기해 왔지만,과연 미래에 무엇으로 북한을 바꿀 수 있을지,남과 북이 통일이라는 명제(命題)에 대해 정치적 · 경제적으로 어떻게 이해관계의 접점을 찾고 인식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지,그것이 가능하기나 한 건지 솔직히 의문이다. 안타깝고 답답하기 짝이 없는 현실이다. 우리가 감상적(感傷的) 통일론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 북은 또다시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와 무력도발을 감행했다. 그것이 북한이다.

논설실장 kunn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