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에릭 매스킨 미국 프린스턴고등연구소 석좌교수는 지난 9일 연세대 알렌관에서 정갑영 경제학부 교수와 대담을 갖고 세계 경제 전망과 한국의 교육제도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매스킨 교수는 올해 가을학기 연세대 경제학부 석좌교수로 초빙돼 '게임이론'과 '미시경제'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정 교수=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매스킨 교수=부동산 등 자산가격의 거품이 금융위기를 초래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것은 외부적으로 보이는 증상일 뿐이다. 금융위기를 초래한 진짜 원인은 과도한 차입과 저금리였다. 금융회사의 과도한 차입을 규제해야 한다. 또 현재의 경기회복세를 유지할 수 있을 만큼 낮으면서도 물가상승이나 자산시장의 거품을 막을 수 있을 만큼 높은 수준으로 금리를 유지해야 한다.

▼정 교수=한국 금융산업은 여전히 규제가 많다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최근 정부가 금융산업을 일일이 통제하는 '관치금융'이 재현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매스킨 교수=한국이 20~3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불행한 일이다. 미국에서는 금융산업에 대한 규제가 너무 약한 것이 문제였지만 한국은 미국이나 유럽보다 금융시장에 대한 규제가 강하다. 규제를 완화해 시장의 자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갈 필요가 있다.

▼정 교수=세계 경제가 내년에 더블딥(이중 경기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매스킨 교수=더블딥이 실제로 올지 여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다만 현재의 상황을 보자면 미국의 3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매우 높게 나온 것을 비롯해 희망적인 신호가 나오고 있다. 더블딥이 없을 거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더블딥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정 교수=달러가치가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원 · 달러 환율도 하락을 거듭하고 있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입장에서는 환율 하락에 따른 수출경쟁력 약화가 걱정된다.

▼매스킨 교수=달러가치는 앞으로도 하락세를 지속할 것이다. 달러가치 하락은 세계 경제의 회복세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달러 약세는 미국이 경상수지 적자를 줄이고 경제의 건전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한국은 달러 약세로 수출 감소 등의 어려움을 당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미국 경제가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한국에도 유리하다.

▼정 교수=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이후 비슷한 위기가 재발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다. 이 같은 불안감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매스킨 교수=다양한 통화로 외환보유액을 비축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 달러에만 치우쳐서도 안 되고 유로에만 치우쳐서도 안 된다. 여러 나라와 통화스와프를 맺어둘 필요도 있다.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의 외환위기를 막기 위해 아시아통화기금(AMF)을 창설하는 것도 좋은 생각이다.

▼정 교수=달러가치 하락이 가져오는 또 다른 문제는 국제 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 상승이다. 원자재 가격 상승이 세계 경제회복에 걸림돌이 되지 않겠는가.

▼매스킨 교수=유가상승 역시 세계 경제회복의 증거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때 배럴당 40달러까지 떨어졌던 것이 지금은 80달러대를 회복했다. 유가가 너무 낮으면 대체 에너지 개발이 늦어진다. 새로운 에너지원을 개발해야 할 필요성을 덜 느끼기 때문이다.

▼정 교수=요즘 한국에서는 엘리트 교육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일부 정치인들은 외국어고 등 엘리트 교육을 목적으로 만든 고등학교를 폐지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엘리트 교육은 어떤 방식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는가.

▼매스킨 교수=엘리트 교육을 너무 일찍부터 시작할 필요는 없지만 고등학교 때부터는 우수한 학생을 선발해 특수한 교육을 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수한 인재를 길러내는 것은 국가의 미래를 위해 중요한 일이다. 외국어고 등을 폐지하자는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다.

▼정 교수=한국의 교육에서 심각한 문제 중 하나가 사교육이다. 사교육비가 너무 높아 가정 경제에 부담을 주고 있다.

▼매스킨 교수=미국에서도 SAT(대학입학자격시험) 점수를 높이려고 사교육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문제가 되고 있다. 대학입학 점수를 높이기 위한 사교육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자녀의 재능과 관심에 따라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울 수 있도록 하는 사교육은 좋다고 본다.

정리=유승호/사진=정동헌 기자 usho@hankyung.com



◆정갑영 교수

△1975년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1985년 미국 코넬대 박사△영문 학술지 '글로벌 이코노믹리뷰' 편집인

◆매스킨 교수

△1976년 하버드대 응용수학 박사△MIT,하버드,프린스턴대 교수 역임△2007년 노벨경제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