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 유산이 동유럽을 여전히 기웃거리지만 아직 (자본주의)시장에 대한 신뢰를 흔들기엔 부족한 상황이다. "(파이낸셜타임스)

1989년 동유럽 사회주의가 무너진 지 20년.동유럽 주요 국가에 대한 분석기사를 쏟아내고 있는 유럽 언론들은 독일뿐 아니라 다른 동유럽 국가에서도 '철의 장벽'은 무너졌지만 '보이지 않는 장벽'은 여전히 남아있다고 전하고 있다. 주둔하고 있던 옛 소련군도 떠나고,민주주의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으며,경제수준도 20년 전에 비해 평균 50% 이상 좋아졌지만 여전히 사회적 불만이 팽배하다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자유노조운동으로 '벨벳혁명'의 도화선이 됐던 폴란드의 경우 혁명이 여전히 '진행형'이라고 전했다. 폴란드의 수출이 독일 프랑스 등 유럽연합(EU) 주요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89년 26%에서 2008년 45%로 늘었고,과거엔 특권이던 해외여행도 일반화됐다. 하지만 국민들은 여전히 상대적 박탈감에 쌓여있고, 1989년 혁명 당시의 기대수준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폴란드 항구도시 그단스크에서 자유노조 운동을 주도했던 파벨 아마모비스치 그단스크 시장은 "내가 시장이 된 뒤에도 과거 사회주의 시절처럼 '왜 경호원을 대동하지 않냐'는 질문을 여전히 받을 정도로 관습과 사회인식은 변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헝가리 상황도 유사하다. 헝가리 정가는 여전히 과거 사회주의 좌파 정당과 중도우파 정당 간 알력이 물과 기름 사이처럼 유지되고 있다.

이와 함께 동유럽 각국의 고질적인 사회부패 현상은 치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 체코는 국제투명성기구의 투명성 순위가 1999년 39위에서 지난해 45위로 떨어졌다. 폴란드 역시 같은 기간 44위에서 58위로 추락했고,불가리아도 63위에서 72위로 악화됐다. 여기에 글로벌 경제위기의 유탄을 맞아 동유럽 경제가 동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도 문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빠르게 자본주의에 적응하며 세계시장에서 주목받는 기업들도 등장하고 있다. 전 세계 1억명이 사용하는 바이러스 백신 프로그램을 생산하는 폴란드 알윌소프트웨어 같은 기업들이 동유럽 각국에서 속속 늘고 있다. 한마디로 1989년 동유럽 혁명은 '여러 얼굴을 가진 자식들'을 탄생시킨 것이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