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시장에 큰 장이 서는 연말이 되면서 은행과 보험, 증권사들이 업권간 벽도 없는 무한 경쟁에 돌입했다.

4일 금융계에 따르면 11월과 12월은 퇴직연금 신규 사업자 선정과 교체의 절반 정도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는데다가 퇴직연금 시장은 업종 구분없이 만인을 상대로 다투는 곳이기 때문에 경쟁 열기가 그 어느 곳보다 뜨겁다.

금융계 한 관계자는 "계열사간에도 정보공유나 사전 교통정리 없이 냉정한 승부를 벌인다"고 말했다.

점유율 1위인 삼성생명을 포함한 보험사들은 그 어느 때보다 잃어버린 시장을 되찾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퇴직보험이 퇴직연금으로 전환되는 과정에 보험사 몫을 은행과 증권사에 뺐겼다며 설욕을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현재 업종별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은행이 4조7천770억 원(52.5%)으로 가장 많고 생명보험이 2조6천586억 원(29.2%), 증권 1조1천380억 원(12.5%), 손해보험 5천311억 원(5.8%) 순이다.

업체별로는 삼성생명이 1조6천389억 원으로 가장 많지만 그 뒤로는 국민은행(9천251억 원), 신한은행(8천891억 원), 우리은행(8천671억 원), 농협(5천239억 원), 기업은행(5천30억 원) 등 은행들이 포진해있다.

보험사 중에는 교보생명(4천491억 원), 삼성화재(3천507억 원)이 10위 안에 겨우 들었다.

보험사들은 은행이 대출과 연계하는 '꺾기'라는 강력한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고 성토하는 한편 보험업종이 제도상 불리한 점이 많다며 강하게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보험연구원은 최근 "조사대상 314개 사업장 중 퇴직연금으로 전환하며 보험사에서 다른 금융기관으로 변경한 기업이 283개이고 그 중 51개가 불건전행위를 경험했다고 답했다"는 내용의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금융당국도 보험권에 힘을 실어주는 듯 보인다.

금융감독원은 연말을 앞두고 금융회사들이 퇴직연금 유치를 두고 과열경쟁을 벌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이달 중 판매실태를 점검하기로 했다.

'꺾기'가 주요 점검 대상이다.

금감원은 또 퇴직연금 제도를 도입하는 기업이 늘면서 금융회사 간의 경쟁으로 꺾기가 발생하고 있어 퇴직연금 꺾기에 대해서도 제재하기로 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도 "같은 필드에서 경쟁을 하는데 서로 다른 규정을 적용받는 것은 불합리한 점이 있어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험사들은 보험은 퇴직연금이 특별계정으로 묶여 있지만 은행은 일반 예금과 섞여 있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에 따라 더 높은 수익률을 제시할 수 있다고 불만을 품어왔다.

증권의 경우도 사모펀드 형태로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지만 보험사는 공시이율만 제시할 수 있으므로 사실상 손발이 묶였다는 것이 보험사들의 주장이다.

은행들은 꺾기 논란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퇴직연금 수익자는 근로자이고 대출자는 기업으로 서로 다르다는 점을 고려하면 꺾기가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시장 점유율을 키우기 위해 온 힘을 쏟고 있다.

은행들이 주로 내세우는 점은 넓은 점포망을 통한 편리한 서비스다.

국민은행은 1천200여개 영업점에 퇴직연금 전담직원을 배치해서 전국 어디서나 수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전략이다.

도입을 검토하는 업체의 임직원을 대상으로 실무대학을 운영하는 등 사전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우리은행은 부산 경남지역 기업을 적극 공략하기 위해 공단지역에 퇴직연금센터를 만들었다.

기업은행은 올해 부행장 3명 등으로 구성된 '퇴직연금 공동 추진위원단'과 5개 부서가 참여한 '퇴직연금 지원협의회'를 구성했으며 지점 경영평가에 퇴직연금 실적도 포함시켰다.

기업은행은 "퇴직연금시장 점유율 확대 등을 위해 보험업 진출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윤선희 조재영 최윤정 최현석 기자 mercie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