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의 왕푸징 등 시내를 걷거나 대형 상가에서 물건을 고르다 보면 슬쩍 다가와서 말을 건네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영수증을 사지 않겠냐고 묻곤 한다. 기업화된 '영수증 제조업체'들은 웹사이트를 통해 광고를 하거나,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보내는등 과감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중국 공안(경찰)은 최근 가짜 영수증을 만드는 대규모 조직을 검거했다고 발표했다. 공안은 이들이 올초부터 약 8000만장의 가짜 영수증을 만들어 풀었다고 설명했다. 영수증마다 쓰여 있는 액면가격이 달라서 총액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기 어렵지만 가짜 영수증이 지하의 거대 산업인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가짜 영수증으로 거짓 회계장부를 만든 사람이 누구냐는 점이다. 놀랍게도 가장 큰 고객은 허난성의 한 시정부였다. 공안은 이 시정부의 이름을 밝히진 않았지만 그 도시에서 올해 거래된 가짜 영수증 가운데 5분의 1이 시정부가 자체 예산으로 사들인 것이라고 밝혔다. 금액은 약 3억위안(약 540억원)에 육박한다. 시골의 작은 시정부가 이 정도니 큰 도시에선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 밖의 큰 수요처는 철도 항만 도로 등을 건설하는 업체들이었다. 정부가 발주한 대형 건물 시공업체서도 많은 양의 가짜 영수증이 발견됐다. 공안은 8개 기업은 아예 가짜 영수증을 처리하는 팀을 만들어놓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들은 원가를 부풀리기 위해 가짜 영수증이 필요했고 이를 통해 약 1억위안(180억원)의 돈을 뒤로 빼돌렸다. 중국정부가 경기 부양을 하겠다며 쏟아붓고 있는 4조위안의 돈은 이렇게 새나가고 있었다. 곶감 빼먹듯 돈을 뒤로 감추고 그 빈 자리는 지하 시장에서 사온 가짜 영수증이 메워줬다.

중국에서 가짜 영수증이 거대 시장을 형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부실한 회계규정 탓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회계규정은 글로벌 기업들이 사용하는 것과는 크게 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업이나 협회 심지어 지방정부에서도 '샤오진쿠(小金庫)'라 불리는 비자금을 조성하는 게 일반화될 수 있는 원인도 여기에 있다. 가짜 영수증을 만드는 조직을 검거하기 전에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게 맞는 순서일 것이란 생각이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