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지킴이인 연기금이 코스피지수가 1600선 아래로 밀리자 다시 주식 매수에 나섰다. 펀드 환매로 자금 사정이 어려운 투신권을 제외한 증권 보험 은행 등 다른 기관투자가들도 저가 매수를 확대하는 분위기다.

29일 코스피지수가 1560선까지 급락했다가 오후 들어 1.48% 하락한 1585.85로 낙폭을 줄인 데는 이 같은 기관들의 매수세가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증시의 최대 '큰손'인 국민연금이 이날 2200억원 규모의 주식을 사들이기 위해 자금을 굴릴 운용사를 선정하겠다는 계획을 공고해 앞으로 기관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질 것이란 기대가 나오고있다.

◆국민연금 내달부터 주식 매입 본격화 기대

국민연금은 주식 매입 자금을 추가로 집행하기 위해 △순수 주식형펀드 운용사(자문사) 4곳과 중소형주펀드 운용사 2곳을 선정하겠다는 공고를 냈다. 순수 주식형펀드 운용사는 회사별로 300억원 규모며 중소형주펀드 운용사는 각각 500억원 규모로 총 2200억원이다.

한 증권사 법인 담당 임원은 "당초 이날 중소형펀드 운용사 2곳을 선정한다는 공고만 나올 예정이었으나 증시가 1500대로 밀리자 순수 주식형펀드 운용사도 함께 선정키로 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 자금은 내달 중 집행될 가능성이 높다. 국민연금의 사정에 밝은 한 운용사 대표는 "통상 선정 공고가 나고 자금 집행까지는 한 달가량 걸리는데 증시가 오르면 선정하고도 자금 집행을 미루는 경우가 많지만 증시가 하락한 지금 상황이라면 선정도 빨라지고 자금도 바로 집행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민연금의 올 연말 국내 주식 편입비중 목표치는 15.2%인 반면 8월 말 기준 국내 주식 편입 비중은 13.7%로 아직 1.5%(4조원)가량의 매수 여력이 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올 연말 국내 주식 편입 목표치는 15.2%지만 위 아래로 5% 포인트가량을 자율적으로 설정해 운용하고 있다"며 "증시 상황에 따라 이 범위가 정해진다"고 설명했다.

연기금 8개월여 만에 최대 순매수

연기금은 이날 장 초반 순매도로 시작했지만 주가가 점차 크게 밀리자 저가 매수에 나섰다. 연기금은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만 736억원어치의 주식을 사들여 1500억원 이상 매입했던 올 2월24일 이후 최대 순매수를 기록했다.

이 같은 연기금의 순매수는 증시가 2.4% 넘게 하락한 전날(292억원)에 이어 이틀째다. 연기금은 500선이 깨진 코스닥시장에서도 이틀 연속 순매수세를 이어갔다. 올 들어 줄곧 주식을 팔아 상승장에서 수익을 내지 못했던 연기금이 코스피지수가 1500선으로 내린 기회를 이용해 저가 매수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400억원 이상의 주식을 사들인 증권과 보험(310억원) 은행(105억원) 등 다른 기관투자가들도 1600선 붕괴를 계기로 일제히 저가 매수에 나섰다.

투신의 경우 500억원 이상 순매도를 나타냈지만 870억원이 넘는 프로그램 매물을 감안할 때 사실상 주식을 매수한 것으로 풀이된다.

연기금 등 기관이 사들인 종목은 주로 내수주와 실적 전망이 좋은 대형주에 집중됐다. 기관이 이번 주 들어 사들인 종목은 롯데쇼핑(744억원) 삼성전기(513억원) KB금융(443억원) CJ제일제당(136억원) 등과 외국인의 집중 포화를 맞은 포스코(678억원) 현대차(576억원) 등이었다.

이에 대해 김성주 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자금이 부족한 기관들이 주가 하락을 기회로 삼아 싼 값에 주식을 사서 주식 비중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가가 내려가면 자산 내 주식 비중도 그만큼 낮아지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이에 따라 증시의 조정이 깊진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류용석 현대증권 연구위원은 "1600선은 주봉상 중기 추세선에 해당해 경기 회복 추세가 꺾인 게 아니라면 지지선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1600선 아래에서 기관들의 저가 매수가 확인됐기 때문에 1550선 전후에서 조정이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김재후/강지연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