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매니저의 투자비밀⑤]수익률 1만4820%의 마법…'펀드운용의 해리포터' 앤서니 볼턴
2001년 11월 영국의 통신기업 브리티시 텔레콤(BT)은 실적 악화를 이유로 무선 사업부문(MMO2)을 분리해 떼어냈다. MMO2 주식은 BT의 주주들에게 분배됐고 이들은 나눠받은 주식을 팔기 바빴다. MMO2는 작은 회사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BT주주들에게 적은 지분이 돌아갔고, 이들은 주식을 보유하고 있기 보다는 파는 쪽을 택했다.

이렇게 시장에 나온 MMO2 주식 중 상당수를 한 펀드매니저가 쓸어 담았다. 오랜 경험과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시류를 거슬러 투자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을 갖춘 인물이었다.

몇 년 후 MMO2는 스페인의 통신회사인 텔레포니카에 매각됐다. MMO2는 분사 이후 곧 경영 정상화를 이뤄 냈고 매력적인 인수·합병(M&A) 대상이 됐다. 물론 MMO2에 투자한 이 펀드매니저는 큰 차익을 남길 수 있었다. MMO2는 그의 펀드에서 몇 년간 가장 비중이 큰 종목 가운데 하나였다.

이 펀드매니저가 2008년 영국의 유력일간지 <더 타임스>가 선정한 역사상 최고의 투자자 10인 가운데 하나인 앤서니 볼턴(59)이다. 이 명단에는 워런 버핏, 벤자민 그레이엄, 존 템플턴, 필립 피셔 등 전설적인 투자자들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볼턴은 2007년말 펀드 운용에서 손을 떼기 전까지 30년 가까운 세월을 오롯이 피델리티의 펀드매니저로 지냈다. 그가 1979년 12월부터 28년 동안 맡아온 ‘피델리티 스페셜 시츄에이션 펀드’는 그 이름처럼 수익률도 특별했다. 누적수익률은 무려 1만4820%에 이르렀고, 연평균 수익률은 19.5%에 달했다. 운용 기간 내내 시장수익률을 웃도는 놀라운 기록도 세웠다.

흔히 그를 피터 린치와 비교하곤 한다. 두 사람 모두 피델리티의 펀드매니저로 명성을 쌓았기 때문이다. 피터 린치는 1977년부터 1990년까지 13년 동안 피델리티 ‘마젤란 펀드’를 운용하며 2700%의 기록적인 수익률을 기록한 투자의 ‘귀재’이다.

하지만 볼턴과 달리 피터 린치는 운용 기간 내내 시장을 이기지는 못했다. 13년의 운용기간 중 두 해는 시장 수익률을 밑돌았다. 볼턴을 피터 린치보다 높게 평가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경제신문의 온라인미디어 <한경닷컴>은 지난 10월 21일 한국을 처음 찾은 볼턴을 직격 인터뷰했다. 기자회견이후 단독 인터뷰를 진행해 마법같은 수익률을 올려 '펀드계의 해리포터'로 불리는 그의 투자 스토리를 생생하게 들었다. 볼턴은 최근 홍콩에 머물며 아시아 지역 펀드매니저와 애널리스트를 대상으로 교육을 하고 있다.


◆“M&A 대상이 될 만한 기업을 찾아라”

볼턴은 가치투자자다. 시장에 비교적 덜 알려진 숨은 진주를 찾는데 탁월하다. 이미 불붙기 시작한 주식은 그의 관심 밖이다. 바짝 마른 나뭇가지 더미처럼 작은 불씨에도 활활 타오를 수 있는 주식이 투자 대상이다. 그의 마법같은 수익률도 알고 보면 이 같은 투자의 연속에 따른 결과물이다.

될 성 싶은 주식을 고르는 일은 쉽지 않다. 기업의 재무상태를 분석하고, 역사적 주가 수준을 판단해야 하며, 산업 내에서 기업의 위치 또한 이해해야 한다. 여기에 경영진의 능력과 주주간의 관계 등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부분까지 알아야 한다. 볼턴은 이처럼 복잡한 일련의 과정을 간단하게 표현한다. 한마디로 “인수 대상이 될 만한 기업에 투자하라”는 것이다. 차익을 노린 사모펀드가 군침을 흘릴 만한 기업을 찾으라는 게 그의 조언이다.

“사모펀드가 M&A를 시도하는 것은 특정 기업의 재무적 매력을 크게 보기 때문이다. 다른 조건이 같다면 안정적이면서 예측 가능한 현금흐름이 있는 기업을 선호하라.”

대체로 사모펀드에 매력적인 회사는 가치투자자들에게도 매력적이다. 따라서 가치투자의 잣대로 투자를 한다면 M&A 대상이 될 만한 기업을 미리 고르는 게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여기에 대주주의 지분율까지 낮다면 금상첨화다. 지배주주가 없으면서 많은 잉여현금을 창출하는 기업은 특히 M&A 공격 대상이 되기 쉽니다.

실제로 볼턴은 가치투자를 하면서 수차례 M&A 대상이 된 기업의 주식을 미리 보유할 수 있었다. 앞서 스페인의 통신사에 인수된 MMO2도 이러한 경우다. 여기에 경영진과의 소통도 성공하는 투자의 비밀 가운데 하나다.

“MMO2가 BT에서 분사한 지 얼마 안 돼 MMO2의 최고경영자를 찾아 갔습니다. 몇 년 뒤쯤 회사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 같은지 물어봤어요. 그러자 그는 대형 통신회사 중 한 곳에 합병될 것으로 본다고 담담하게 답했습니다.”


◆“경영진의 입을 통해 나오는 정보에 주목”
[펀드매니저의 투자비밀⑤]수익률 1만4820%의 마법…'펀드운용의 해리포터' 앤서니 볼턴

볼턴은 전세계 투자정보를 수시로 받아본다. 피델리티의 자체 애널리스트는 물론 각 증권사, 투자정보 전문 업체 등으로부터 이메일, 음성메일, 전화 등 다양한 형태의 자료를 받는다. 그러나 가장 좋아하면서 높게 평가하는 정보는 회사 관계자나 경영진으로부터 직접 들은 얘기다.

경영진과 접촉하기 이전에 그는 해당 기업에 대해 더 많이 알려고 노력한다. 미리 회사에 대해 알아 둬야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고, 좋은 질문을 할 수 있어서다. 볼턴은 무엇보다 주가 그래프를 살핀다. 3,5,10년 그래프를 보고 지금의 주가 수준이 역사적으로 어느 위치에 있는지 확인한다. 주가수익비율(PER), 주가순자산비율(PBR), 주가매출액비율(PSR), EV/EBITDA 등의 밸류에이션 지표도 중요한 정보다.

“가능하다면 20년 동안의 차트를 봐야 합니다. 적어도 업황이 한 번의 완전한 사이클을 그리는 동안의 주가 수준을 알아야 합니다. 10년 미만의 자료는 사실을 왜곡할 수도 있습니다.”

회사의 주주구성도 꼭 파악한다. 지분이 집중되어 있는 지 분산되어 있는 지 검토한다. 종종 좋은 기관투자자가 주요 주주로 참여하고 있을 때도 있다. 더욱 평가가 좋아지는 순간이다. 여기에 그동안의 실적 자료, 앞으로의 실적 전망 등도 참고한다. 기업 관련 정보는 되도록 원본 그대로를 보도록 노력한다. 증권사 등에서 가공한 요약본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다.

경영진과 만남이 이뤄지면 볼턴은 논의할 의제를 직접 정하는 것을 좋아한다. 전략, 최근의 성과, 신규 사업 등은 물론이고 재무 관련 자료도 세밀하게 검토한다. 미리 자료를 보고, 혹은 설명 중 잘 모르는 내용이 있으면 이해할 때까지 질문한다. 뻔한 대답이 나올 만한 질문은 되도록 삼간다. 어떻게 묻느냐에 따라 대답도 달라진다.

“경영진에게 ‘중국 사업은 잘 돌아가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렇습니다’가 됩니다. 대신 ‘중국에서 제조 부서를 운영하는 게 당초 생각보다 어렵다고들 하더군요’라고 말하면 당신은 보다 좋은 답변을 들을 수 있을 겁니다.”

그는 미팅의 마지막 몇 분을 경쟁사에 대해 얘기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경영진이 예상과 다른 답변을 하면 그것은 중요한 정보로 간주된다. 대부분의 기업은 경쟁사에 대해 부정적인 답변을 늘어놓지만, 그 내용이 긍정적이라면 신뢰가 더욱 쌓인다.


◆“리스크를 줄이려면 대차대조표를 봐야…”

피터 린치는 “재무를 이해하지 않고 투자하는 행동이 가장 위험하다. 주식투자로 가장 큰 손실을 입는 경우는 대차대조표가 나쁜 기업에 투자했을 때”라고 했다. 볼턴도 이 말에 공감한다. 부실한 대차대조표를 보유한 기업에 투자했을 때 가장 결과가 안 좋았기 때문이다. 상당수 펀드매니저는 잘 나갈 주식을 고르는데 탁월하지만, 뛰어난 펀드매니저는 망할 만한 기업을 고르는 안목도 있다.

볼턴이 꼽은 최악의 투자사례 중 하나는 영국의 소프트웨어 업체 아이소프트다. 이 회사는 작은 소프트웨어 회사로 시작했으나 이후 세계적인 IT(정보기술) 업체들과 계약을 하기도 했다. 볼턴은 장기적으로 대형 소프트웨어 업체에 아이소프트가 합병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결국 악화된 대차대조표와 개발 프로그램의 지연 탓에 이 회사는 스스로 M&A 시장에 나왔다.

“부채 비중이 높은 기업에 투자하는 것은 빌린 돈으로 부채가 없는 기업을 사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상황이 안 좋게 되면 은행은 기업에 사업을 정리해서 돈을 갚으라고 압력을 넣을 것입니다. 궁지에 몰린 이런 매물은 투자자들과 기업이 원하는 가격 한참 아래에서 시세가 형성됩니다.”


◆지금은 비관보다 낙관 할 때

볼턴은 지수 전망이나 시장 예측을 자주 하지 않는다. 시장의 방향성을 아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닥과 꼭지를 알 수 있는 몇 가지 신호들은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 역사적 사이클이 시장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지표라는 설명이다. 볼턴은 이 사이클을 크게 14단계로 나눴다.

‘낙관→흥분→스릴→행복→불안→부인→공포→절망→패닉→항복→낙심→우울→희망→안도’

그럼 2009년 하반기 지금은 이 단계 가운데 어디쯤에 있을까. 적어도 우울 단계를 벗어나 희망과 안도 단계에는 들어섰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펀드매니저의 투자비밀⑤]수익률 1만4820%의 마법…'펀드운용의 해리포터' 앤서니 볼턴
“2007년부터 2009년까지 미국 증시는 57%나 빠졌습니다. 대공황 시기인 1929년부터 1932년 사이 86% 하락한 것을 제외하면 1900년 이후 지금까지 가장 큰 폭의 하락률을 기록했습니다. 또 하나 참조할 것은 미국 주식의 10년 단위 실질 수익률인데요, 1870년 이후부터 보니까 단 두 번 실질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니다. 한 번은 1911년부터 1920년 사이이고, 또 한 번은 2001년부터 2009년까지입니다. 따라서 지금은 낙관할 때이지 비관할 때는 아닙니다.”

시장 예측을 위한 또 하나의 지표로 그는 시장의 심리를 꼽았다. 시장 심리는 전문가들의 견해나 변동성, 뮤추얼펀드의 현금 보유 비중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유럽 헤지펀드의 순 익스포져(노출액)가 올 2월 바닥을 찍고 상승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낮은 수준입니다. 미국 총시장가치 대비 머니마켓펀드(MMF) 자산 비율을 보면 2009년 4월 47%까지 상승했습니다. 2006년에는 이 비율이 12%였습니다. 상승장을 이끌 만한 자금이 시장에 있다는 얘깁니다. 걱정이나 두려움이 덜 해 지면 이 돈은 주식시장으로 흘러들어 올겁니다.”

밸류에이션 측면에서 잉여현금흐름이나 지역별 잉여현금흐름 수익률을 봐도 시장은 저점을 찍었다는 진단이다.

볼턴은 마지막으로 개인투자자들이 적어도 3년, 가능하면 5년 앞을 내다보고 주식투자에 나서라고 조언했다. 적어도 3년 이내에 쓸 돈으로는 주식을 하지 말라는 얘기다.

“줄기나 가지를 보고 투자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지만 나무나 숲을 보고 투자하는 게 훨씬 기회가 많습니다. 짧게는 몇 주, 혹은 몇 달을 내다보고 투자를 하다 보면 조급해지고 실패할 확률도 커집니다.”

글=한경닷컴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
사진= 한경닷컴 양지웅 기자 yangd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