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투자에 대한 대중의 의견은 그리 긍정적이지 못하다. 일각에서는 주식투자를 삶에 있어서 ‘악의 축’으로 몰기도 한다. 예컨대 결혼을 앞두고 만난 자리에서 미래의 장인어른이 자신의 딸과 결혼하게 될 남성에게 질문을 던지는 장면을 그려보자. “그래, 자네는 일 외에 관심을 두는 흥미거리(분야)가 무엇인가?” 남성이 대답한다. “네! 저는 주식투자의 생리와 매커니즘을 파헤치기 위하여 자나깨나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습니다.” 순간 어르신의 얼굴에 그늘이 지게 될 것을 예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과 언어, 그리고 생각은 시간이 흐르면서 변할 수도 있고, 상황에 의하여 잘못 해석되면서 오해될 수도 있다. 위의 경우도 이러한 경우이다. 주식투자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은 (투자의) 순기능 성격에 대하여 무지한 상태에서 투자에 내재되어 있는 역기능 요소에 피해를 당한 사람들에 의해 형성된다. 이 부정적 의견이 대중적 교감을 가지는 이유는 위와 같은 사례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에서 흑인이 많이 사는 동네는 매우 위험하다”라는 표현과 유사한 성격의 ‘편견적 오류’이다. 이러한 오류는 투자의 본질에 대한 정확한 이해의 부족에서 비롯된다. 일반적으로 투자 실패는 경제법칙이나 가치산정과 같은 본질적이고 기초적인 틀을 벗어나거나 간과할 때 발생한다.

“첫 번째 속임을 당할 때 잘못은 속인 사람에 있지만 두 번 이상 속임을 당할 때의 잘못은 속은 사람에게 있다”라는 격언이 있듯이 잘못된 판단에 대한 책임은 판단을 내린 바로 그 사람에게 있다. 내가 아는 한 친구가 증권사 직원에게 계좌 매매를 일임하고 큰 피해를 본 후, 하소연하던 말이 생각난다. “사람이 성실해 보이길래 맡긴 건데.. ㅠㅠ“

안타까운 사실이긴 하지만 투자 피해의 근원은 투자의 ‘악’ 기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부분 피해자 당사자에 있다. 왜냐하면 투자는 본질적으로 강제적이 아닌 ‘선택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통하여 나는 “왜 우리는 항상 투자하여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제시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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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윤리적 시각에서 보든, 아니면 단순히 경제적인 이유만 보든 간에 상관없이 우리는 항상 투자에 참여하여야 한다.

사회윤리적 시각에서 본 투자의 이유

돈이 어디에 쓰임은 돈을 소유한 사람들의 선택에 따른 것이므로 소득, 투자 그리고 소비에 대한 각자의 선택은 그들이 속한 사회의 가치 체계를 형성하는 간접적 도구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가 사회의 일원으로서 선거권을 행사하는 것에 비교될 수 있다. 선거권을 행사하지 않는 것은 사회 시스템 형성에 무관심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마찬가지로 만약 우리 소유에 있는 돈의 경로를 우리가 직접 결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는 돈의 실체와 영향 여부에 대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예컨대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돈을 전부 소비하거나 기부하거나 혹은 투자하지 않는 이상, 은행에 맡긴 돈은 배수로 증가하여 더 큰 액수가 되어 시장으로 유출되고 우리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어디론가 흘러간다. 당연히 우리의 돈이 어디로 흘러, 누구에 의해, 무슨 목적으로, 어떻게 쓰이는지 우리로서는 알 길이 없다. 우리의 돈은 그 대상이 누구이건, 또는 무엇이건 간에 특정한 목적을 지닌 특정주체의 활동을 위해 직•간접적으로 제공되는 활동자본이다. 사회적 책임을 지닌 사회구성원이라면 수동적으로 책임을 포기하는 것보다는 능동적으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옳은 행동이다. 돈의 ‘사회적 효용’은 (투자와 소비에 대한) 각자의 의도, 동기, 목적, 방법론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다.

경제적 시각에서 본 투자의 이유

최근 미국에서는 하나의 흥미로운 조사 결과가 있었다. 한 사람이 공중파 5개사 방송국의 일기예보 적중률을 평가한 것이다(J. D. Eggleston, <Freakonomics>). 향후 일주일 간 “언제 비가 내릴 것인가(최소 강우량 1/10인치 기준)?”에 대한 1년간의 일기예보 적중률 조사에서 영예의 1위는 근소한 차이로 NBC 방송국이 차지했다. 조사대상 방송국의 평균 적중률은 7일 후의 경우는 73%, 당일의 경우에는 85%였다.

85%라는 수치는 매우 높아 보인다. 미국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방송국 일기예보에 대한 신뢰를 가져도 될 듯싶은 만족스러워 보이는 수치이다. 과연 그럴까? 만약 누군가가 실험기간인 1년 동안 내내 매일마다 “안 온다” 라고 예측했다면 계산되는 적중률이 86.3%라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만 그럴 것이다. 조사에 따르면 이 수치를 꾸준히 상회한 기상캐스터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이것과 주식투자의 관계는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날씨가 “비가 안 오는 쪽”으로 편향적이듯이 주식시장은 구조적으로 상향 편향의 성격을 지닌다. 기업의 가치는 아무리 하락해도 0원에 그치지만 위쪽으로는 이론적으로 무한하다는 점과 세계 인구가 축소하지 않는 이상 장기적으로 보면 전체 기업이익이 상승해야 하는 점, 이 두 가지 사실 때문이다.

나의 조사에 따르면 2005년에서 2007년까지 국내 증시에서 전문가(애널리스트)들이 기업이익을 +-15% 범위 내로 예측할 수 있는 전망적중률은 32%였다. 그리고 이와 같은 전망적중률에 근거할 때 투자자의 예상 승률은 15.2%(매 분기 평가를 한다고 가정할 때 3년 동안 6분기, 그리고 그 이상에 걸쳐 시장을 이길 수 있는 누적승률)에 불과하다. 하지만 주식의 상향 편향적 특성을 반영하여 주가의 하루 변동을 1.2%로 가정하고 주식시장에 상장된 기업들이 12%정도의 장기 유지 가능한 자본이익률 성향을 지니고 있다면 32% 전망적중률을 지닌 평균 투자가가 기대할 수 있는 승률은 (3년 동안 6분기가 아니라 4분기만 이겨도 되기 때문에) 15.2%에서 55% 정도로 올라가는 셈이 된다. 기본적으로 주어진 확률이 50% 이상인 게임에서 동전을 던질까 말까를 고민하는 것은 그리 현명한 행동이 아니다 (알프레드 박, 『오메가포인트 경제학』, 팜파스, 128~1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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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막으로 굴리면 눈덩이는 스스로 커진다. 하지만 내리막 길을 보고 이 눈덩이를 만든 사람은 나 자신이다. 마찬가지로 일단 비옥한 토양에 나무를 심었다면 그 나무를 기르기 위하여 해야 할 일은 제때에 물을 주는 것 외에는 별로 없다. 나무 옆에 앉아서 그 나무를 쳐다보고 있다고 더 빨리 크는 것이 아니며, 정작 빛과 습도처럼 성장에 가장 필요한 원소는 나의 노력 여하와 상관없이 자연에서 온다.

투자 활동에서도 제때에 물을 주는 것처럼 (주식과 채권 사이에서의 자산배분 등의) 기초적인 관리를 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리고 매 순간 시세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올바른 판단과 그에 따른 행동이다. 평지가 아닌 내리막 길을, 시멘트 바닥이 아닌 비옥한 토양을 찾는 것이 우선이요, 찾았다면 실행에 옮기는 것이 그 다음이다. 투자에 대한 자발적인 결정(행위)이 있고, 이를 뒷받침하는 기초가 튼튼할 때 투자는 저절로 성공한다.

<알프레드 박 에셋플러스자산운용 글로벌운용본부장/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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