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콕세터, 이 사람이 없었다면 21세기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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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 공간의 왕 시오반 로버츠 지음/ 안재권 옮김/ 승산/ 660쪽/ 2만5000원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갖고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면 같은 사물이나 현상도 전혀 달라 보인다는 뜻이다. 대표적인 게 예술가들이다.
시인은 평범한 일상에서 인생의 큰 의미를 찾아내고,화가는 젊고 탱탱한 처녀가 아니라 노인들의 깊게 파인 주름에서 아름다움을 포착한다. 겉모습보다는 그 속에 묻혀 있는 뜻과 연관관계 또는 경륜을 읽어내는 것이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기하학자'로 불리는 도널드 콕세터(1907~2003)는 세상을 기하학적으로 봤다. 일상에서 우리가 무심하게 대하는 사물이나 현상에서 일정한 패턴을 찾아내 체계화하는 데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다.
1981년 동료들과 저녁식사를 하던 자리에서의 일이다. 그는 사과와 칼을 갖다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사과를 수평으로 얇게 베어내기 시작했다. 사과 가운데까지 잘라들어가자 씨앗들이 꼭지가 다섯 개인 별 모양으로 배치돼 있는 모습이 드러났다. 기하학에 일가견이 있던 동료들은 깜짝 놀랐다. 겉으로 봐서는 전혀 알 수 없는 5중대칭이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또 해바라기를 강의 도구로 즐겨 사용했다. 해바라기 씨 하나하나에 붉은색 매니큐어를 살짝 발라 기하학적으로 거의 완벽한 패턴을 이루는 황금비를 돋보이게 해서 학생들에게 제시하곤 했다. 이 같은 패턴은 '잎차례'로 알려져 있다. 거품,벌집,파인애플의 돌기,해면 등에서도 패턴을 찾아냈다.
콕세터는 이처럼 여러 사물에서 다른 사람들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대칭과 규칙성을 발견했고,이는 현대사회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할 때 엄청난 양의 가공되지 않은 정보에서 패턴을 찾아내는 법,모뎀 기술,면역학 등도 콕세터 기하학과 관계가 있다. 건축물 설계,컴퓨터로 디자인된 자동차의 유려한 선,애니메이션의 생생한 캐릭터들,세제용기의 부드러운 곡면 역시 기하학의 알고리즘이 응용된 사례들이다.
《무한 공간의 왕》은 콕세터 기하학의 매력에 푹 빠진 저널리스트가 쓴 일종의 전기다. 영국에서 태어났으나 주로 캐나다에서 연구활동을 하며 이뤄낸 학문적 업적을 그의 인생과 함께 흥미롭게 소개했다.
특히 콕세터가 당대의 쟁쟁한 수학자들과 나눈 대화를 상세하게 다뤄 읽는 맛을 더한다. 다만 수학이나 기하학에 관심이 많지 않은 독자는 생소한 용어와 개념 탓에 애를 먹을 수도 있겠다. 방대한 분량의 주(註)와 참고자료 목록이 붙어 있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시인은 평범한 일상에서 인생의 큰 의미를 찾아내고,화가는 젊고 탱탱한 처녀가 아니라 노인들의 깊게 파인 주름에서 아름다움을 포착한다. 겉모습보다는 그 속에 묻혀 있는 뜻과 연관관계 또는 경륜을 읽어내는 것이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기하학자'로 불리는 도널드 콕세터(1907~2003)는 세상을 기하학적으로 봤다. 일상에서 우리가 무심하게 대하는 사물이나 현상에서 일정한 패턴을 찾아내 체계화하는 데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다.
1981년 동료들과 저녁식사를 하던 자리에서의 일이다. 그는 사과와 칼을 갖다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사과를 수평으로 얇게 베어내기 시작했다. 사과 가운데까지 잘라들어가자 씨앗들이 꼭지가 다섯 개인 별 모양으로 배치돼 있는 모습이 드러났다. 기하학에 일가견이 있던 동료들은 깜짝 놀랐다. 겉으로 봐서는 전혀 알 수 없는 5중대칭이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또 해바라기를 강의 도구로 즐겨 사용했다. 해바라기 씨 하나하나에 붉은색 매니큐어를 살짝 발라 기하학적으로 거의 완벽한 패턴을 이루는 황금비를 돋보이게 해서 학생들에게 제시하곤 했다. 이 같은 패턴은 '잎차례'로 알려져 있다. 거품,벌집,파인애플의 돌기,해면 등에서도 패턴을 찾아냈다.
콕세터는 이처럼 여러 사물에서 다른 사람들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대칭과 규칙성을 발견했고,이는 현대사회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할 때 엄청난 양의 가공되지 않은 정보에서 패턴을 찾아내는 법,모뎀 기술,면역학 등도 콕세터 기하학과 관계가 있다. 건축물 설계,컴퓨터로 디자인된 자동차의 유려한 선,애니메이션의 생생한 캐릭터들,세제용기의 부드러운 곡면 역시 기하학의 알고리즘이 응용된 사례들이다.
《무한 공간의 왕》은 콕세터 기하학의 매력에 푹 빠진 저널리스트가 쓴 일종의 전기다. 영국에서 태어났으나 주로 캐나다에서 연구활동을 하며 이뤄낸 학문적 업적을 그의 인생과 함께 흥미롭게 소개했다.
특히 콕세터가 당대의 쟁쟁한 수학자들과 나눈 대화를 상세하게 다뤄 읽는 맛을 더한다. 다만 수학이나 기하학에 관심이 많지 않은 독자는 생소한 용어와 개념 탓에 애를 먹을 수도 있겠다. 방대한 분량의 주(註)와 참고자료 목록이 붙어 있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