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환 전 거래소 이사장 "금융감독당국 집요하게 협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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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감사를 이틀 앞두고 전격 사퇴한 이정환 전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16일 임직원들에게 보낸 퇴임사를 통해 자신을 둘러싼 조직적인 사퇴 압박이 있었음을 시인했다. 퇴임사에는 검찰 수사는 물론 금융당국의 압력과 협박까지 있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 앞으로 파장이 예상된다.
KBS를 필두로 언론재단, 지방행정공제회 등 전 정권에서 임명되거나 선출된 공기업 수장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무차별적인 적출 작업의 또다른 실체가 사실로 드러났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이 전 이사장은 퇴임사에서 "직·간접적인 사퇴압력도 많이 받았다"며 "지난해 3개월 간의 검찰 압수수색 수사와 감사기관의 압박은 물론 금융정책 당국의 집요한 협박과 주변 압박도 받았다"면서 "이 과정에는 평소에 존경하고 좋아하던 선 후배까지 동원됐다"고 털어 놓았다.
그는 "하지만 가장 힘든 것은 거래소 조직 내부를 흔드는 것이었다"며 "증권 관련 단체와 사외이사, 그리고 직장 내부의 몇몇 인사들까지 회유했고, 부하로 데리고 함께 근무하면서 매일 접촉하는 사람들을 흔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그동안 자본시장의 역사를 20년 이상 거꾸로 후퇴시키는 반시장주의적 조치를 경험했다"면서 "그 과정에 서 배신, 하극상, 배은망덕 등의 반윤리적인 일들까지 보았다"고 고백했다.
자신을 쫓아내기 위해 한국거래소를 공공기관으로 지정하는 등 반시장적인 조치가 단행됐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기회주의자, 영혼도 능력도 없는 출세주의자, 때때마다 줄을 바꿔 탄 처세주의자 등 수많은 좀비들과, 원칙도 철학도 없이 그냥 자신과 맞지 않는다며 덫을 놓고 집요하게 따라다니면서 괴롭히는 스토커도 목도했다"며 자신의 거세작업에 앞장선 인사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또 "우리의 인생은 길지만 좀비들의 생명은 짧다"면서 "소신과 의리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부스러기라도 던져 주면 감읍하는 좀비들은 일시적으로 득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머지 않아 사멸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 전 이사장은 "하지만 이 모든 것에 대해 비굴하지 않았고 힘든 만큼 보람도 있었다"면서 "잘못된 정책에 대해 잘못이라고 진언했고 어차피 사퇴는 피할 수 없어 명분 있는 사퇴를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끝으로 "이제는 시장참가자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나라 자본시장 발전을 위해 계속 참여하고 또한 응원할 것" 이라고 말했다.
이정환 전 이사장은 지난 13일 금융위원회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전격 사퇴했다. 지난해 3월 취임 한 이 이사장은 1년7개월 만에 3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 하차했다.
이 이사장은 당시 배포한 사직서에서 "복수 거래소 허용을 위한 거래소 허가주의 도입 법안이 조속히 국회를 통과 해 자본시장법이 선진화되고 거래소의 공공기관 지정 해제가 이뤄지길 건의한다"고 밝혔다.
한경닷컴 정현영 기자 j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