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지 않는 즐거움'이란 책을 낸 캐나다의 컨설턴트 어니 젤린스키는 죽어라 일만 하는 것보다는 실업자가 더 행복하다고 단언한다. 직업이 신분을 나타내는 시대에 무슨 해괴한 소리냐고 할지 모르지만 논리는 단순하다. 딱 한번 주어지는 인생을 마음껏 즐겨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에 집착하거나 막연히 미래를 위해 힘겹게 일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란다. 가능하면 적게 일하고 많이 놀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 자신도 일주일에 나흘만 일하고,1년중 5~8월까지 넉달 동안은 푹 쉰다.

그렇게만 살 수 있으면 오죽 좋으랴만 대다수 사람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아주 잘 사는 집이라면 모를까 대학을 졸업하고 한두 해 쉬는 것도 쉽지 않다. 기껏 가르쳐 놨더니 백수로 허송세월하느냐는 눈총도 그렇고,스스로 못견뎌 하기 십상이다. 주변에선 이것 저것 따지지 말고 아무데나 들어가라고 권하지만 그것도 만만치 않다. 경제위기 여파로 신입사원 모집이 크게 줄어든데다 웬만한 회사는 입사 경쟁률이 수십대 1로 치솟기 예사다. 청년 실업자수가 35만2000명(통계청,8월 말)이나 되는 이유다. 여기에 장기 취업 준비생이나 구직을 단념한 사람들까지 합치면 110만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그래서 '청백전(청년백수 전성시대)'이라는 말까지 생겼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기업별 입사전형에 맞춰 스터디 그룹을 구성,단기간에 준비하는 '스폿 스터디(spot study)'가 취업 풍속도로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일종의 '취업 번개모임'이다. '스펙' 만들기만으론 부족해 아예 맞춤형 취업 준비에 나서는 것이다. 스폿 스터디는 인터넷 채팅이나 이메일,휴대전화 등을 통해 5~7명 단위로 구성되는 게 보통이다. 기업들이 프레젠테이션 인적성검사 심층면접 등 다양한 평가방식을 도입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우리는 초 · 중 · 고교 시절을 공부에 절어 보낸 후 어렵게 들어간 대학교를 졸업하면 또 다시 취업 장벽을 넘어야 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좋든 싫든 적응할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백수예찬론자'인 젤린스키의 일과 성공에 대한 이런 조언을 들으면 좀 위안이 될까. '균형 잡힌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데 역사상 지금보다 더 좋은 시기는 없었다. 자신의 일을 즐기는 사람은 돈을 위해 일하는 사람보다 장기적으로 더 많은 돈을 번다는 통계가 있다. 성공은 자신이 원하고 바라는 일을 꾸준히 즐기면서 할 때 찾아온다. '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